바른 복음과 바른 기도 

(마 6:5-15) 


우리는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를 통해 기도의 핵심을 배울 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마태복음 6장에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주기도’입니다. 특징적인 부분은, 예수님께서는 주기도문에 들어가기 전, 두 가지 유형의 잘못된 기도 유형을 보여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당시 기도에 대해 갖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편견과 오해를 벗겨야 복음과 말씀에 합한 바른 기도를 할 수 있다고 보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잘못된 기도의 유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뉩니다.  하나는 유대인의 기도이며, 또 하나는 이방인의 기도입니다. 


① 먼저 잘못된 ‘유대인의 기도’를 살펴보겠습니다(마 6:5~6).

마태복음 6:5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 거리, 모퉁이에서 기도 드리는 모습이 나옵니다. 

기도의 동기가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사람에게 보이기 위함입니다.  이 구절에서는 눈을 씻고 봐도 기도의 대상인 하나님이 나오지 않습니다. 다음 마태복음 6:6절을 보면,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기도하라’는 문장이 나오는데, 예수님께서는 유대인의 기도 모습이 아닌, ‘골방 기도’를 제시해 주십니다.  특히 6절에는 기도의 대상이신 하나님에 대해 언급되어 있습니다. (“네 아버지께” “네 아버지께서” 라고 두 번이 나옵니다.) 이것은 발신자와 수신자의 개인적인 면담, 즉, 독점성을 의미합니다. 즉, 너만의 아버지(하나님)를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 사람들 앞에서 기도 하는 것 자체에 의식하지 말고, 진심으로 나(하나님)만 독대하며, 나(하나님)와의 관계 속에서 기도해 보라 하십니다. 기도는 바로 하나님과의 인격적이며, 개인적인 신뢰에서 출발합니다. 이 인격적인 관계는 어디에서 시작됩니까? 그것은 바로 복음을 통한 구원이며, 오직 새 생명을 얻은 신앙인에게 해당되는 것입니다(고후 5:17).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이라는 역사의 대 사건을 통해,  죄인된 우리에게 값없이 주시는 은혜입니다. 그것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오직 믿음을 통해서 주어진 선물입니다. 이 선물은 새로운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관계의 시작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이 관계는 단순히 심판자와 죄인의 관계를 넘어, 창조주 하나님과 피조물의 관계에서 머물지 않고, 부모와 자식 관계로 지정된 은총의 시작입니다. 

이러한 관계를 좀 더 구체적으로 보여 주고 있는 것은 6절에 나오는 골방(ταμεῖόν)이라는 단어입니다. 신약성경에 4번 언급된 골방이라는 단어를 통해 그 의미를 짐작할 수 있지만(마 6:6, 마24:26, 눅12:3, 눅12:24), 6절에 나오는 ‘은밀한 중에’라는 문구를 통해 골방의 의미를 확정지울 수 있습니다.  마6:6에 나오는 골방의 의미는 다른 어떤 이들도 개입할 수 없는 장소입니다. 밖에서 빛조차 들어갈 수 없는 패쇄적 장소로 오직 나와 하나님 아버지만이 존재하는 은밀한 장소를 말합니다. 정리하면, 예수님께서는 골방이라는 단어를 택하신 이유는, 오직 하나님과 나만의 관계 속에서, 어느 누구의 개입이 허용되지 않는, 개인적이고 인격적인 만남을 설명하기 위해서입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께만 인격적이며, 개인적인 기도가 가능하다면, 말씀에서 제시된 골방의 개념은 광범이해 집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모습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골방기도를 말씀하신 예수님이 정작 4복음서 어느 곳에도 골방에서 기도하셨다는 내용이 없습니다. 심지어 예수님께서는 장소를 바꾸어가며 기도 하셨습니다. 혼자 기도하실 때도 있었고, 겟세마네나, 변화산에서는 제자들과 일정한 거리에서 떨어져서 기도하시기도 하셨지만, 사람들 앞에서도 기도하셨을 때도 많았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여럿과 모여서 기도하도록 주문하시기도 하셨습니다.(마18:20) 기도는 함께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여야 합니다. 어느 누구도 의식하거나, 개입될 필요가 없습니다. 오직 복음을 받은 자만의 특권입니다. 골방은 단순히 장소를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기도로서 아무도 없는 장소이든, 많은 사람이 모여서 드리는 합심기도이든,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이것이 유대인의 그릇된 기도를 피할 수 있는 중요한 내용입니다. 


② 예수님께서 지적한 잘못된 기도로 이방인의 기도를 살펴보겠습니다(마 6:7~8).  

7절에는 독특한 단어인 “중언부언”이 나옵니다. 보통 우리말 사전에서 보면 “했던 말을 또 하고 또 하고 하는 경우”, “같은 단어를 반복하는 경우”이라는 쓰입니다.  하지만 여기의 '중언부언'란 단어를 기도에 적용하기는 어렵습니다. 기도하면서 같은 단어를 반복지 않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매번 단어집을 갖고, 기도할 때마다 같은 뜻의 다른 단어를 찾아보아야 한다면, 우리는 기도하기 이전에 이미 언어학자가 되어 있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감사하게도, 예수님께서 이 단어의 의미를 7절 하반절에 바르게 풀이해 주셨습니다. 7절 하반절에 보면 ‘말을 많이 하여야’라는 단어가 나오는데, 이것이 ‘중언부언’이라는 단어에 대한 적절한 설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말을 많이 하는 방법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다시 말해서 ‘텅 빈말,’ ‘내용이 없는 말’을 의미합니다.  당시 이방인의 기도는 얻고자 하는 소망을 반복하여 말하므로 무의미한 말처럼 주절거리는 모습을 띕니다. 이들 이방인들의 생각 속에는 신들이 기도자에게 관심이 없기 때문에 계속해서 조르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여겼습니다.  이러한 기도의 핵심은 자기가 할 수 없는 욕망을 신들에게 고통을 주어 성취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때로는 ‘하나님의 보좌를 움직이는 기도’를 원합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을 간절히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자신의 뜻을 굽혀 우리의 기도를 들어 주신다는 생각입니다.  하지만 오늘 말씀에 비춘다면, 하나님의 보좌를 움직여 내가 원하는 것을 획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보좌에 내 마음이 움직여져 하나님 뜻에 기꺼이 내가 순종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 바른 기도라 볼 수 있습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뜻에 대한 오해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의 의견과 우리의 처지를 묵살하고, 마음대로 결정하는 독재자로 여기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뜻은 ‘우리를 잘 아시며, 우리를 사랑한다는 점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자녀 된 우리에게 진짜 필요한 것을 주시기 원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며,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이미 있어야 할 것을 다 아십니다. 하나님께선 그분의 자녀와 인격적인 얘기를 솔직히 나누고 싶어 하십니다. 그것도 아주 간절하고도 적극적인 대화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선 당신의 자녀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을 기도를 통해 주시길 원하십니다. 그런데 때로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과 우리가 원하는 것은 다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대부분 우리가 원하는 것에 급급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 전체를 보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을 때에 맞게 채우시길 원하십니다. 그래서 기도자의 마음을 잘 타이르기도 하시고, 곧바로 들어 주시기도 하시며, 오랜 기간을 함께 기다리기도 하십니다. 

 우리는 ‘내가 무엇을 원하느냐’가 아닌 ‘나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놓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것을 알기 위해서 복음을 통한 올바른 ‘말씀’이 가능케 합니다. 그것이 복음 받은 자의 특권이며, 은혜입니다. 복음 받은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구원 받은 자만이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서 나를 진단하심을 믿고, 순종하려 합니다. 그리고 진정 내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말씀을 통해 듣고, 기도를 통해 바꿔 나갑니다. 이것이 기도의 정수입니다. 

 

오늘 말씀을 요약하겠습니다. 


우리는 복음을 받은 자들입니다. 복음 받은 자들은 특권이 있습니다. 그것은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거룩하신 참 하나님께 나갈 수 있는 방법인 ‘기도’입니다. 독생자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라는 엄청난 대가로 말입니다.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죄를 사하신 놀라운 은혜의 결과입니다. 따라서 기도 드리지 않는 삶을 산다는 것은 신앙인이 자신에게 주어진 특권을 버리는 것입니다. 불신자들은 절대 누릴 수 없는 것을 신앙인이 스스로 포기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신앙의 정체성을 잃게 하는 계기를 마련하는 것입니다.  신앙인은 시간을 내서 반드시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신앙인들은 성경이 말씀하시는 바른 기도를 해야 합니다. 오늘 말씀처럼, 구원을 통한 올바른 관계 속에 개인적이며, 인격적인, 그리고 솔직한 기도가 이루어진다면, 결국은 그리스도 중심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이것은 이 세상의 기도와 전혀 다른 믿는 자만의 기도의 특징이자, 특권입니다. 모두 성도님들에게 이 특권이 마음껏 누려지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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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orean Sermon
  2. 영어설교
    English Sermon
  3. 목사님과의 대화
    Dialogue with Pastor
slogan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고린도전서 15장 58절)

"Therefore, my dear brothers,
stand firm.
Let nothing move you.
Always give yourselves fully
to the work of the Lord,
because you know that
your labor in the Lord is
not in vain."
(I Corinthians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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