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항복의 축복
크리스찬들이 이 생명에 의존치 않고 자기 방법, 자기 자원에 의존해서 삶의 필요를 채우며 살 때, “육을 좇아 행한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독립의 삶으로 구원 전의 옛 사람이 살던 삶의 유형입니다.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모든 죄의 뿌리는 바로 이 ‘독립’에 두고 있으며 그 밖의 개별적인 행위들은 모두 이 ‘독립’의 결과물에 불과합니다.
바울사도는, “너희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으라” (엡 4:22-24, 골 3:9-10) 고 명하셨습니다. 이 뜻은 행위를 흉내내라는 뜻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거룩한 행위가 우리들을 경건한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세상 기준입니다) 우리의 행위로는 하나님의 거룩을 성취 할 수 없습니다.(이사야 64:6, 롬 10:3, 빌 3:9)
이것은 곧 생명과 생명의 교체를 뜻합니다. 즉,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예수께서 사신 것이라,”(갈 2:20) “내가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빌 3:8-9)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갈 6:14) 라는 고백들을 보면 이것은 행위의 모방이 아니라 생명의 교체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은 결코 죄에 대해 죽은 자들이 옛 사람이 살던 패턴 그대로 연장되어 크리스찬 삶을 살도록 해놓지 않으셨습니다. 그 분의 구원의 계획은 대다수의 크리스찬들이 살아가는 것보다 훨씬 더 큰 그림 속에 담겨 있습니다. 그 분은 믿는 자들이 이 땅에서 뿐 아니라 영원히 존재하는 영생의 삶으로 이어지는 삶을 살도록 계획해두셨습니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후의 삶은 아담에게서 물려받은 생명에 의해서가 아니라 새 생명에 의해서 살도록 예정해 놓으신 것입니다. 그 목적을 위해 우리에게 예수 생명을 넣어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생명에 의존해서 연합의 삶을 살게 될 때에, 혹은 성령을 좇아 살게 될 때에, 믿는 자들에게는 예수님께서 성경에서 약속하신 그 질적인 삶이 경험되어지기 시작합니다. 이 땅에 속하지 않고 하늘에 속한 삶, 달리 말하면, 예수 생명 속에 있는 삶이 경험되어지기 시작합니다.
영혼 깊숙히 하늘 평화를 누리는 쉼이 있는 삶, 폭풍 속에서도 기쁨과 감사가 있는 삶, 과거와 현재의 상처로부터 치유가 일어나는 삶, 죄, 인간 관계, 또는 삶의 구속들로부터 엄청난 자유함을 누리는 삶, 끊임없이 성령의 에너지를 누리는 삶, 그 무엇보다도 예수님의 사랑 안에 거하고 있음을 실감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이 신의 사랑을 알게 되면 믿는 자들은 사랑이 없고 배척이 있는 곳에서도 마음이 병들지 않습니다. 자아상이 낮아지지 않고, 오히려 매우 높아집니다. 우울증이 생기지 않을 뿐 아니라, 스트레스로 인한 몸의 증상들이 개선됩니다. 용납과 인정을 받기 위해 매달리지 않고, 삶이 감사의 에너지로 충만합니다. 그러므로 삶의 목적이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이보다 더 무엇을 원하십니까? 많은 것을 소유하고 명예를 누린다 해도 이보다 마음중심을 더 큰 만족감으로 채울 수 있는 삶이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고린도전서 15장 58절) "Therefore, my dear brothers, stand firm. Let nothing move you. Always give yourselves fully to the work of the Lord, because you know that your labor in the Lord is not in vain." (I Corinthians 15: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