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린에서 종교개혁자 마틴루터의 유적이 있는 비텐베르그 까지는
111키로 2시간이 소요된다. 시내에는 전차가 다니고 아름다운
마을 풍경이 정겨워 연신 카메라 샷터를 누른다.
고층의 아파트가 아닌 아름다운 전원적인 풍경이 이국적입니다.
비텐베르크는 독일 동부 작센주에 있는 도시입니다. 인구 48,000명정도
마르틴 루터가 종교 개혁을 일으킨 곳으로 유명하고 엘베 강
연안에 위치한다. 1260년 작센비텐베르크 공국의 중심지가 되었다.
15세기 말, 작센의 주요 도시가 되었으며, 1502년 비텐베르크
대학교가 개교 하였다.
필립 멜란히톤은 마르틴 루터와 더불어 가장 주요한 독일 종교개혁자이다.
그는 1497년 2월 16일 브레텐에서 태어났고, 그는 어려서 고어 습득에
비상한 재능을 보여 주변을 놀라게 하였다. 그의 멘토 요하네스 로이흐린은
어린 필립을 총애 하여 1509년 원래의 성씨 슈바르체르트 대신하여
그리스어 멜란히톤으로 바꾸어주었다. 갓 21살이 된 멜란히톤은
프리드릿히로부터 당시 신생대학이었던 비텐베르크 대학의 교수로
초빙되었다. 해가 거듭되는 종교개혁과정 속에서 그는 루터의 제일
친한 측근이 되었으며, 예배 교안 등을 집필하였고, 공동으로 성서도
번역하였고 유명한 종교개혁의 없어서는 않될 질친한 동지였습니다.
루터의 동지이자 동반자였던 멜란히톤의 집이다.
루터의 집 박물관으로 사용하는데 옛 수도원이였다고 합니다.
성직자의 독신 수도를 반대한 루터는 수녀였던 카트리나 폰 보라와 결혼해
이곳에 살았다. 박물관에서는 작센 주의 크라나흐가 그린 루터의 초상과
제단화, 당시 판매됐던 면죄부, 종교개혁 확산에 쓰인 판화 등의 자료를
볼 수 있다.
루터는 로마 카톨릭교회의 부패와 면죄부 판매와 같은 잘못을 비판하고
믿음을 통하여 의롭다함을 얻는 이신칭의를 주장하였다. 칭의를 통한
개인 구원의 새 시대를 열어주었다. 면죄부 판매을 비판한 그는 1517년
95개 논제를 게시함으로써 1520년 그는 교황 레오 10세로부터 자신의
모든 주장을 철회하라는 요구를 받았으나 오직 성경의 권위을 앞세우
면서 비성경적 가르침들을 거부하였다. 95개 반박문을 개재한
성 교회 문이다.
일행이 함께 기념사진을 찍으며 마음으로 개혁을 외치고 있다. 참배객과
방문객이 많아 사진찍기도 어려웠다.
루터가 은신하여 숨어살던 성 교회
루터의 무덤과 동상
루터가 설교하던 시 교회. 성도들이 예배를 드리고 있어서 5분정도
참예를 했습니다.
말틴루터가 교수로 제직했던 비텐베르크 대학교.
겨울철이라 오후 4시만 되면 해가 기울어서 드라세덴을 보고 책코 프라하로
가는 여정이 남았습니다.
드레스덴은 독일 동부에 위치한 작센 주의 주도로 엘베 강변에 위치해 있다.
작센 삼각 대도시권의 한 부분으로서, 예로부터 독일 남부 문화·정치·
상공업의 중심지이다. 문화 중심지로 유명하여 '독일의 피렌체'로 불리며,
특히 엘베 강변의 '브륄의 테라쎄'는 '유럽의 발코니'라 불릴만큼 경치가
아주 뛰어나고 아름답다.
2차세계대전때 연합군의 폭격으로 파괴된 구도시를 재건한 이들의 노력이 놀랍다.
바르크 양식의 걸작 츠빙거 궁전. 어두움이 엄습을해서 한번 쳐다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습니다.
오후 5시에 드레세덴을 출발하여 국경을 넘어150키로를 두시간 달려
프라하에서 저녁을 먹습니다.
천문시계등 프라하의 야경 투어를 하고 트램(전차형버스)을 타보고
버스로 숙소를 향했습니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고린도전서 15장 58절) "Therefore, my dear brothers, stand firm. Let nothing move you. Always give yourselves fully to the work of the Lord, because you know that your labor in the Lord is not in vain." (I Corinthians 15: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