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진정한 성도인가?

요한일서 1:5-10


5. 우리가 그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은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는 것이니라

6.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둠에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하지 아니함이거니와

7.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8.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10.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이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후 대략 반세기가 흐른 시점에서, 초대교회는 중요한 도전에 직면합니다. 영지주의를 추구하는 거짓교사들이 교회안에서 잘못된 교리로 성도들을 혼란에 빠뜨리는 것입니다. 영지주의의 거짓 가르침의 첫번째 오류는 예수님은 완전한 인각의 육체로 오시지 아니하셨고, 유령이나 귀신과 같은 영적 존재로 오셨다고 주장합니다. 육체가 없으셨기 때문에, 인간이 느끼는 배고픔과 피곤함 등의 육체적 필요가 없었고, 또 먹지도 마시지도 않으셨고, 죽지도 않으셨고, 때문에 부활도 없었다고 가르쳤습니다. 이에 맞서 사도 요한은 ‘우리’가 직접 듣고 보고 만져봤다라고 증언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온전한 인간의 육체로 우리중에 오셨다는 것을 믿는 것이 바로 사도 요한이 제시하는 진정한 크리스챤인지 아닌지를 구분하는 첫번째 기준입니다. 만약 그리스도가 인간의 몸으로 오신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는 곧 그리스도의 고난당하심과 죽으심, 그리고 부활하심과 승천하심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흘리신 십자가의 피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피가 없이는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갈 방법이 없습니다. 길이 없습니다.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몸으로 오셨다는 것을 확신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어지는 요한일서 1:5-10절에서 사도 요한은 하나님의 백성임을 증명하는 두번째 기준을 제시합니다. 바로 우리가 죄인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영지주의자들은 영과 육이 분리되어 있다고 이분법적으로 사고합니다. 영은 선하고 육은 악하고, 또 인간이 추구해야 하는 것은 영적인 것이기 때문에 비록 육체가 악을 저지르더라도 이것은 영적인 자아의 잘못도 책임도 아니고, 세상을 살아가는 육체가 어떤 죄악을 저지르더라도 진정한 자아인 영은 죄가 하나도 없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즉, 스스로에게 어둠이 하나도 없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이러한 영지주의 거짓교사들의 주장에 대해 사도 요한은 어떻게 가르치는지 함께 공부해 보겠습니다.


5. 우리가 그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은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는 것이니라
5절에서, 사도 요한은 하나님은 빛이시고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 말은 자신이 지어낸 말이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듣고 전하는”것임을 분명히 합니다. 즉, 하나님께서 스스로를 칭하실때 빛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o 시편 27:1.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o 디모데전서 6:16.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어떤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이시니 그에게 존귀와 영원한 권능을 돌릴지어다 아멘
빛 (light)은 성경 말씀에서 지적인 정의와 도덕적인 정의를 가지고 있습니다.

o 지적 정의 – 예수님이 우리의 구세주이심을 아는 것을 말할 때 ‘빛’이라는 표현을 씁니다. 즉, 우리가 어떻게 구원받을 수 있는지에 대한 진실, 곧 복음을 깨닫고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o 도덕적 정의 – 성경에서의 ‘빛’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뜻합니다.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으로 거듭난 성도의 삶도 하나님의 거룩하심 안에서 함께 거룩한 삶을 살아갑니다.
‘빛’과 반대의 개념으로, 성경에서는 ‘어둠’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습니다. 지적으로는 진실을 모르거나 외면하는 어리석음을 뜻하고, 도덕적으로는 하나님의 거룩하심에서 돌아선 범죄함과 죄악을 뜻합니다.
성경의 여러 군데에서 ‘빛’과 ‘어둠’에 대한 말씀들을 쉽게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에베소서 4장은 도덕적으로 어두운 곳에 머물면서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반대되는 죄악들을 저지르는 자들, 즉 어둠 또는 흑암에 속한 자들에 대한 경고의 말씀입니다. 사도 요한이 경계하는 당시의 영지주의 거짓 교사들도 어둠에 속한 자들입니다. 어둠에 속한 자들에 대해서 사도 베드로도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o 베드로후서 2:17. 이 사람들은 물 없는 샘이요 광풍에 밀려 가는 안개니 그들을 위하여 캄캄한 어둠이 예비되어 있나니
당시의 거짓교사들인 영지주의자들 (노스틱, Gnostic)의 원래 뜻은 ‘모든 것을 아는 (enlightened)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당연히 영지주의자들은 자신들이 모든 진실을 알고 모든 선과 거룩함 가운데 있는 것처럼 주장하였습니다.  또, 스스로에게 어둠이 하나도 없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러한 주장을 거짓이고 위선이며 자만이라고 분명히 말합니다. 죄가 없으시고 온전히 거룩하신 분은 오직 하나님뿐입니다.  만약 이러한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이는 오만하고 겸손하지 못한 태도입니다. 때문에 사도 바울은 로마서 3장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o 로마서 3:10.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비록 영접한 성도라 할지라도 다를 바가 없습니다. 육체의 삶은 여전히 불완전하고 세상속에서 끝임없이 죄를 저지르며 살아갑니다. 이렇게 불완전하고 죄짖는 성도가 어떻게 온전하심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습니까? 인간의 노력과 열심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합니다.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에 의지할 때에만 우리의 창조주이신 하나님과 바른 교제를 가질 수 있습니다. 이는 사도 바울이 골로새서를 쓰면서 한 고백에서도 분명히 나타납니다.

o 골로새서 1:13.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14.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하나님에게는 한점의 어둠도 없다는 것을 분명히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만약 누군가가 신에게는 선과 악이 공존하고 있다고 말한다면, 그 사람이 믿는 신은 우리의 창조주이신 하나님이 아닌 다른 무엇입니다. 신은 대부분의 경우에는 정의롭지만 어쩔 때에는 그렇지 못하고 이기적이거나 불의를 저지를 때도 있다고 말하는 사람도 다른 무엇인가를 말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그리스 로마신화에 나오는 신화속의 주인공들이 좋은 예일 것입니다. 그들은 변덕이 심하고 마치 인간과 같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공정하지 못하고 때로는 이기적이고 부도덕적인 결정과 행동을 합니다. 이러한 것들은 그들이 결코 온전한 신이 될 수 없음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다른 예로는 동양의 음양 사상을 들 수 있습니다. 음과 양이 서로 조화를 이루는 것이 이 세상의 진리라고 말합니다. 선과 악, 빛과 어둠이 함께 동등한 관계로 조화를 이루는 것이 좋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오직 빛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때문에 하나님은 거룩하시고, 정의로우시고, 은혜로우시고, 신실하시고, 또 자신이 선포하신 스스로의 속성을 절대로 바꾸지 않으십니다. 한번 빛이신 하나님이시면 영원한 빛이시고, 또 모든 하나님의 말씀과 역사하심은 서로 모순이 없는 빛이어야 합니다. 우리가 믿는 아버지 하나님만이 오직 유일하신 창조주이시며 절대자이심을 스스로 창세전부터 영원까지 증명하셨습니다.


6.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둠에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하지 아니함이거니와
하나님은 오직 빛이시고 한점 어둠도 없으시기 때문에, 당신의 백성인 성도들도 현재 죄를 범하고 있으면서 하나님과 옳바른 교제를 가질 수 없습니다.
하물며 거짓교사들은 두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요한일서 당시의 교회 안에서 거짓교사들은 스스로를 크리스챤이라고 말하였지만,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조차 제대로 모르는 이들에게 아버지 하나님과의 옳바른 사귐이 있을리 없습니다. 또 그들은 스스로 죄없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들의 이런 거짓말이야 말로 스스로 진리안에 거하지 않음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들은 빛이 아니라 어둠아래에서 행하는 자이기 때문에 그런 거짓말을 아무런 꺼리낌없이 하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성도가 아니고 진정한 구원을 얻지도 못한 자들이 마치 하나님의 백성인양 행세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진정한 성도인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사도 요한은 거짓 크리스챤들은 어둠에 행하고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진정한 성도는 반대로 어둠에서 행하지 않고 빛 가운데서 걸으며, 자신에게는 죄가 하나도 없다는 식의 거짓말을 하지 않고, 또 하나님이 계시하신 진리를 행하는 자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빛 가운데에서 걸으며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비록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죄를 짖게 되지만, 이러한 죄가 우리와 하나님의 교제에 문제가 된다는 것을 이해하고, 조금의 죄라도 있다면 이를 빨리 자비로우신 하나님께 고백하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다시 정상으로 돌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진리를 행한다는 것은, 우리의 믿음이 단순한 지식과 생각을 넘어서 세상 속에서 성도에게 합당한 옳바른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성화하는 삶을 사는 것을 언급하기에 앞서, 세상적인 기준으로도 법을 어기고 비도덕적으로 살면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정상적이길 기대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고 주장하면서도 자신이 행하는 인간적인 죄악에 대해서는 고백하지 않고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줘 버리는 사람들은 자기 스스로를 속이는 자들입니다. 당연히 하나님과의 옳바른 관계가 있을리 없습니다.

우리의 모든 죄, 즉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죄에 대해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서 이미 댓가를 치르셨습니다. 그리스도의 피로 우리를 죄에서 이미 해방시켜 주신 것입니다. 때문에 우리에게는 정죄함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죄의 구속에서 해방되고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났다고 해서,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죄 하나 짖지 않고 성인군자의 삶을 사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여전히 세상 안에서 여러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고, 경우에 따라서는 인간적인 결정을 내리며 하나님과의 관계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합니다. 진정한 성도라면, 이 때에 자신의 죄를 깨닫고 고백할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진실로 빛에 거한다면, 오직 빛이신 하나님에게 우리의 잘못을 솔직히 고백할수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이 피를 보시고 이미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임을 증명하는 두번째 기준입니다.


7.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진정한 성도는 우리의 아버지 하나님의 빛 가운데에서 살아 갑니다. 진리와 거룩함을 갈구하고, 어둠 아래의 거짓과 죄악을 멀리 합니다. 우리가 빛 가운데 걸어갈 때에 성도는 자신이 짖게 되는 잘못에 대해 아버지에게 솔직히 고백하고 용서를 구합니다. 자비로운 아버지께서는 당신의 자녁의 고백을 기쁘게 들으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우리의 잘못을 끊임없이 씻어 주시고 또 용서해 주십니다. 이것이 성도가 아버지 하나님과 가지는 옳바른 교제입니다.

o 에베소서 5:8.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에베소서 5:8절의 말씀에서 사도 바울은  우리가 거듭나기 전에는 흑암에 휩싸인 무지하고 거룩하지 못한 존재였음을 상기시킵니다. 그러나 우리는 진실한 회개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말미암아 새생명을 얻었고, 동시에 하나님 아버지의 거룩하심 안에 머물게 되었습니다. 즉, 아버지의 빛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빛이시니, 우리는 곧 빛의 자녀가 되는 것이고, 때문에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의 성도들에게 빛의 자녀로서 살아가라고 가르칩니다. 우리의 아버지께 기쁨과 찬송이되는 합당한 자녀로 살아 가라고 말합니다.


8.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영지주의 거짓주의자들은 자신들이야 말로 진리를 알고 있고 또 빛 가운데 있는 크리스챤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스스로에게는 죄가 하나도 없다고 거짓말을 합니다. 인간의 육체로 곤고하게 살아가는동안 끊임없는 죄의 유혹아래에 있다는 것을 시인하지 않습니다.
만약 자신이 처음부터 죄인임을 시인하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과연 이 사람이 구원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용서를 받아야 할 죄가 처음부터 없는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런 사람을 위해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필요가 있겠습니까? (물론 영지주의자들은 역사적으로 명백한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조차도 부인합니다).

마태복음 19:16-22절에서, 젊은 부자 청년이 예수님에게 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을수 있냐고 질문합니다. 자신은 모든 율법을 잘 지키고 있는데 또 뭘 더해야 하냐고 묻습니다. 스스로 의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스스로 한점 부끄러움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전형적인 예입니다. 그러나 이 부자 청년은 예수님께서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라고 말씀하시자 이에 답을 못하고 근심하며 떠나갑니다. 자신이 죄인임을 알면서도 이를 억지로 부인하는 사람의 모습니다.
만약 우리 주위에 스스로 정의롭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용서를 구한 만한 죄를 지은 적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들이 겸손해 지고 솔직해 져서 자신의 거짓과 죄악을 고백할 수 있게 되기를 원하며 기도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예수님은 죄인을 구원하러 오신 것이지 의인을 구원하러 오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은 우리의 죄사함을 위한 것이지, 스스로 의롭다고 하는 이들을 위해 흘리신 피가 아닙니다.

o 전도서 7:20. 선을 행하고 전혀 죄를 범하지 아니하는 의인은 세상에 없기 때문이로다

o 로마서 3:10.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스스로의 죄를 부인하는 자는 스스로를 속이는 자입니다. 스스로를 속이면서 하나님 앞에서 거짓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어리석음입니다. 비록 세상법을 어기지 않고 산다고 스스로 죄없다고 생각하는 것도 어리석음 입니다. 이런 어리석음이 하나님의 진리를 가리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8절에서,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즉 우리는 스스로의 노력으로 의인이라고 주장한다면, 이는 자신을 속이는 것이고 또 진리이신 하나님 앞에서 용납받지 못할 태도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9절은 8절의 논리를 반대로 하여 동일한 가르침을 줍니다. 즉 우리가 스스로의 노력으로는 절대로 의인이 될 수없는 죄인임을 고백한다면, 은혜가 넘치시고 의로우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잘못을 보지 않으시고 오직 그리스도의 피를 보시어 우리에게 새생명을 주시고 구원을 약속하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짖게 되는 모든 잘못을 끊임없이 계속해서 씻어주신다는 말씀입니다.

9절에서 우리가 죄를 ‘자백 (confess)’한다고 할 때에는, 우리가 죄인임을 시인하는 것을 뜻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법을 어길 수 밖에 없음을 시인하는 것입니다. 우리 죄를 자백하는 것은 하나님과의 교제를 정상적으로 유지하는 기초입니다. 왜냐하면, 죄를 자백한다는 것은 하나님은 정의로우시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죄를 숨기는 것은 정상적인 교제를 가로막는 것입니다. 우리 죄를 고백하는 것을 하나님에게 용서를 비는 것으로 잘못 이해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또는 뭔가를 해서 죄책감을 씻어 버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아닙니다. 우리가 죄를 고백한다는 것은 우리가 죄를 저지름으로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공의로우심을 범했다는 것을 시인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 피로 우리의 죄가 가리워 졌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죄를 지었으니까 어떻게 하면 용서를 받을 수 있냐고 묻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어떤 분들은 우리가 영접할 때에 이미 모든 죄를 사함받았는데 다시 죄를 자백할 필요가 있냐고 질문하시기도 합니다.

o 에베소서 1:7.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틀린 말씀은 아닙니다. 그러나, 요한일서 1:9절의 말씀과 에베소서 1:7절의 말씀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고, 또 오해를 피하기 위해 정확하게 가르침의 차이를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에베소서 1:7절에서의 죄 사함은 구원, 새생명, 그리고 정죄함이 없음을 뜻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설 때에, 그리스도의 피로 이미 모든 죄의 댓가를 치렀기 때문에 사망의 지옥으로 결코 떨어지지 않고 또한 정죄함이 없다는 것을 뜻합니다. 한번 구원을 받은 성도는 이미 하나님의 백성이요 자녀이기 때문에, 더 이상 죄 사함을 받아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칭의, Justification) 우리는 영원한 용서를 받고 구원을 약속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동안 하나님과 옳바른 교제를 하고 믿음 안에서 영적으로 성숙한 성도가 되기 위해서는, 성화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Sanctification). 우리의 일상을 하나님이 보시기에 아름답고 거룩하게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썩어질 육체로 사는 동안에는 어쩔 수 없이 크고 작은 범죄함으로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공의로우심을 범하게 됩니다. 아무리 하나님의 자녀로 구원을 약속받은 성도라 할 지라도, 항상 100% 거룩한 삶을 살지 못하는 것이 우리의 곤고한 삶인 것입니다. 이 때에, 과연 우리가 잘못을 저질렀다는 것을 아버지 하나님에게 아뢰는 것이 옳겠습니까? 아니면 그냥 모른척 넘어가는 것이 옳겠습니까?

요한일서 1:9절의 말씀은 우리에게 명쾌한 답을 줍니다. 우리 죄를 자백하라고 가르칩니다. 그러면 은혜로우신 아버지께서는 당신의 자녀의 죄 자백을 들으시고 끊임없이 용서해 주실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우리가 용서를 구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그냥 용서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용서를 구하기 위해 뭔가를 해서가 아니라, 부모가 자녀를 용서하듯 사랑으로 감싸주시는 것입니다. 일상에서의 넘치는 용서입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시기 전날 밤,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신 일을 기억하십니까? 요한 복음 13장의 말씀입니다.

o 요한복음 13:4. 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5.  이에 대야에 물을 떠서 제자들의 발을 씻으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닦기를 시작하여  6.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니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주께서 내 발을 씻으시나이까  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하는 것을 네가 지금은 알지 못하나 이 후에는 알리라  8. 베드로가 이르되 내 발을 절대로 씻지 못하시리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  9.시몬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내 발뿐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어 주옵소서  10.예수께서 이르시되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 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니라 하시니
흔히 세족식이라고 부르는 사건입니다. 우리가 세족식을 이야기 할 때에,  낮은 곳에서 섬기라는 가르침으로 많이 해석합니다. 그러나, 그것만이 아닙니다.

베드로가 어찌 주께서 자기의 발을 씻으시냐고 물었을 때에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잘 이해하면 좋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길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 (8절)’고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깜짝 놀란 베드로가 그렇다면 발뿐만 아니라 온몸을 씻겨 달라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대답하시길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 (10절)’. 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새생명을 받은 성도는 주님과의 관계가 이미 형성되었고 그래서 우리는 영원히 깨끗해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일상생활에서 죄를 지으며 살고 있고, 이는 마치 목욕 후에 잠시 밖에 나가 발이 더러워진 것과 같은 상황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럴 경우에 다시 목욕할 필요가 없고 (다시 영접하고 죄사함을 받을 필요가 없고) 발만 씻으면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즉, 일상에서의 죄 고백과 회개입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하나님께 죄를 자백하고, 또 자백을 들으신 하나님께서 당신 백성의 발을 계속 씻어주셔서 깨끗하게 해 주시는 것은 , 당신께서 당신의 백성과 좋은 교제를 가지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이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우리의 구세주이신 예수님께서 우리의 중보자가 되어 주셨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우리가 아버지 하나님과 옳바른 교제를 하지 못할 때에, 즉 우리가 일상에서 죄를 지어 아버지의 거룩하심을 범했을 때에, 우리가 잘못을 저질렀다는 것을 자백하기만 하면 나머지는 중보자이신 예수님께서 다 해결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o 히브리서 7:25.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
 

10.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이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
요한일서에서 사도 요한은 중요한 가르침을 여러번 반복합니다. 요한일서 6, 8, 10절의 말씀은 동일한 가르침입니다. 즉,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의 거룩하심과 공의로우심을 범하는 죄를 저지르고도 아니라고 한다면 이는 자신과 하나님에게 거짓말을 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을 거짓말장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왜 입니까?

성경의 여러 곳에서 하나님께서는 반복하여 말씀하십니다. 우리 스스로의 노력으로는 의인이 될 수 있는 자가 한명도 없고, 모든 인간은 죄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만약 여러분이 ‘나는 죄가 없다’라고  주장한다면, 이는 곧 하나님의 말씀이 틀렸다고 말하는 것이고, 또 하나님의 말씀이 거짓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모욕하는 것이 됩니다.

10절에서, 스스로 죄가 없다고 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 없다고 말합니다. 무슨 뜻입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면서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판단할 수 있는 영적 지혜를 배웁니다. 만약 우리가 잘못을 저지르고도 이것을 잘못이라고 고백하지 못한다면, 우리에게 선악을 구분할 수 있는 영적 지혜가 없다는 것과 같고, 곧 하나님의 말씀을 모른다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범하는 잘못을 저질렀을 때에, 이것이 죄임을 알고 또 아버지 하나님에게 자백하는 것은 성도가 가져야할 마땅하고 성숙한 자세 입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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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한국어설교
    Korean Sermon
  2. 영어설교
    English Sermon
  3. 목사님과의 대화
    Dialogue with Pastor
slogan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고린도전서 15장 58절)

"Therefore, my dear brothers,
stand firm.
Let nothing move you.
Always give yourselves fully
to the work of the Lord,
because you know that
your labor in the Lord is
not in vain."
(I Corinthians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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