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의 열매 II

고전 1:18-25



지난 주에는 우리가 왜 전도를 해야 하는지에 대해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복음 전하는 일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시며 복음 전하라고 부탁하셨습니다. 저희들이 이사야 처럼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라고 응답하며 순종할 때, 전도의 열매는 하나님이 맺게 하신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오늘은 전도의 실질적인 방법에 대해서 알아 보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사실은 우리가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고 실제로 실천에 옮기다 보면, 사소한 방법적인 문제는 저절로 경험에 의해서 터득이 되기 때문에 큰 문제가 아닙니다. 그러나 오늘의 본문 말씀을 통해서, 전도하는 주요 원리에 대해 배울 수 있기를 원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고린도전서 1장 18-25절 입니다. 말씀은 많이 읽을 수록 좋으니까, 다시 한번 읽어 보겠습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기록된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하였으니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냐 이 세대에 변론가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하게 하신 것이 아니냐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18절의 십자가의 도는 십자가의 메세지 즉 복음입니다. 복음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십자가의 도, 십자가의 메세지 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이 복음이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으로 보입니다. 영어로 보시면 foolishness 라고 되어 있습니다. 믿지 않는 자들은 복음을 들으면 말도 안 되는 바보 같은 소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믿는 우리에게 복음은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19절에는, 이사야서의 말씀을 인용해서,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폐하신다고 하십니다. 20절에서는, 이 세상에는 지혜로운 자가 없으며,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하게 하신다고 하십니다. 21절이 아주 중요한 말씀입니다. 이 세상의 지혜로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도저히 알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전도라는 미련한 방법을 통해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신다고 하십니다. 여기서의 미련하다 역시 영어로는foolishness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foolishness가 5번이나 나옵니다. 이 세상의 지혜로 하나님을 알면 다행인데 세상 지혜로는 하나님을 알 수가 없습니다. 25절 말씀대로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는 세상 사람들이 어리석고 미련하다고 하는 그 복음을, 역시나 미련한 전도를 통해서, 믿는 자들을 구원하기를 기뻐하신다고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복음이 아닌 다른 것을 좋아합니다. 십자가 말고 뭐 다른 멋있는 것이 없나 합니다. 기적이 일어난다거나 이상한 영적 경험을 한다거나 아니면 인간의 논리나 상식에 맞아야 좋아한다는 말씀이 22절 말씀입니다. 구원을 받을려면 최소한 착한 행위가 감안 되어야 인간의 지혜에 맞을 겁니다. 행위는 완전히 무시하고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다니 말도 안 된다고 합니다. 착한 사람도 안 믿으면 지옥가고 나쁜 짓 많이 한 사람도 믿으면 천국 간다는게 인간의 상식과 지혜로는 도저히 말이 안 된다는 거지요. 또한 이 땅에서 더 복받고 잘 살고 싶은데 죽고 난 후의 영생이나 천국 얘기를 하니까, 어리석고 미련하게 보이는 겁니다. 하나님의 지혜가 아닌 사람의 지혜로 복음을 이해할려고 하니까 이해가 안 되는게 당연할 겁니다. 말씀을 통해서 복음의 깊이를 조금씩 이해하게 되면, 복음이야 말로 지극히 논리적이고 인간을 구원하는데는 이 길 밖에 없음을 고백하게 됩니다. 깊고 깊은 하나님의 지혜에 감사와 찬양을 드리게 됩니다. 그리고 천국에 대한 소망이 있을 때, 이 땅에서의 삶이 더 복되고 귀하게 살게 된다는 것을 저희들은 압니다.그런데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복음에 촛점을 맞추지 않으면, 말씀에 기초를 두지 않으면, 성경 말씀과는 상관 없이 내 생각 내 지혜로 신앙 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과는 상관 없는 교회 활동이나 봉사, 신기한 기적이나 내 지혜에 근거한 신앙으로 빠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자칫 잘못하면, 타락된 인간의 본성을 충족시켜 주는 수단으로 신앙이 전락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우리가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그리스도만을 중요시하고 전하라고 가르칩니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믿는 자에게는, 다른 어떤 것도 아닌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이 하나님의 능력이고 지혜입니다. 예수님이 우리 신앙의 모든 것이라는 거지요. 23-25절까지의 말씀입니다. 말씀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가 전할 메세지는 십자가의 도입니다. 무슨 이상한 영적 체험이나 고상한 지혜를 전하는 게 아니고,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만 전하면 됩니다. 이렇게 전해 가지고 이 사람이 믿겠나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믿게 하시면 믿습니다. 제가 복음을 전하면서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너무 우스워서 말씀 준비하면서 혼자 많이 웃었습니다. 몇 년 전, 제가 남편과 함께 한국을 방문했을 때, 우리 교회에 나오시던 분의 아버님께 복음 전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 아버님의 집에 가서 남편은 복음을 전하는데 저는 할 일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그 아버님의 아들 되는 젊은 청년이 그 때 그 집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그 청년에게 복음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젊은이는 서울대학교 철학과를 들어갈 때 서울대 문과 전체 수석으로 입학하고 졸업도 수석으로 했다는 굉장히 똑똑한 수재였습니다. 복음을 한참 전하다가 괜히 이런 인간적인 생각이 들었습니다. “철학을 전공까지 했으니 얼마나 철학적일까, 게다가 똑똑하기까지 하다니, 나이 많은 평범한 아줌마가 전하는 이  십자가의 복음이 말도 안되는 소리로 들릴 수도 있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어서, 전하는 중에 한번 물어 봤습니다. “아줌마가 이상한 소리를 하지요?” 그랬더니, 진지하게 “아닙니다. 계속하세요” 하더라고요. 복음을 다 듣고 그 청년은 아주 진지하게 예수님을 그의 구세주로 영접했습니다. 너무 감사했습니다. 그런 생각을 한 제 자신이 너무 우스웠습니다. 이렇게 어리석고 미련하게 보이는 전도를 통해서 한 영혼을 구원하시길 기뻐하시는 하나님, 그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그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세상 지혜로는 하나님을 알 수가 없기 때문에, 미련하게 보이는 복음과 전도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믿는 자를 구원하길 기뻐하십니다.


요한 복음을 보시면 실제로 전도하는 장면이 많이 나와 있습니다. 요한복음 1장 35-46절 말씀을 함께 찾아 보겠습니다. 또 이튿날 요한이 자기 제자 중 두 사람과 함께 섰다가 예수께서 거니심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두 제자가 그의 말을 듣고 예수를 따르거늘 (38-39절은 생략) 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를 따르는 두 사람 중의 하나는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라 그가 먼저 자기의 형제 시몬을 찾아 말하되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 하고 (메시야는 번역하면  그리스도라) 데리고 예수께로 오니 예수께서 보시고 이르되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 하시니라 (게바는 번역하면 베드로라) 이튿날 예수께서 갈릴리로 나가려 하시다가 빌립을 만나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빌립은 안드레와 베드로와 한 동네 벳새다 사람이라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 이르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 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 나다나엘이 이르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빌립이 이르되 와서 보라 하니라 요한 복음 4장 28-29절도 보겠습니다. 여자가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로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이르되 내가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서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하니 참으로 아름다운 전도의 장면들입니다. 먼저 세례요한이 자기 제자 두 사람에게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라고 말하면서 예수님을 전합니다. 구약 시대에 우리 죄 대신 죽었던 어린 양처럼 예수님이 우리 죄를 대신 지고 죽으실 구세주이심을 알려 준 것입니다. 세례요한의 전도를 받고 예수님을 믿게 된 두 제자 중의 한 사람이 안드레인데요. 안드레는 자신이 예수님을 믿게 된 후에, 자기 형제 베드로에게 전도를 합니다.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고 전합니다. 메시야는 그리스도, 곧 구세주(savior)란 뜻입니다. “내가 구세주를 만났다”고 전도를 했습니다. 너무 간단하고 쉽지요. 어려운 말을 사용한게 아닙니다. 그리고는 예수님께로 베드로를 데리고 왔습니다. 안드레의 전도로 베드로가 예수님을 믿게 되고 예수님의 제자가 됩니다. 43절에 보시면, 이튿날 예수님께서 빌립에게 나를 따르라고 하십니다. 세례요한의 전도를 받은 두 제자 중에 또 한 사람이 빌립일 수도 있습니다. 빌립이 예수님을 만난 후에, 나다나엘에게 전도를 합니다. “구약에서 모세와 여러 선지자가 예언한 메시야가 바로 나사렛 예수다”라고 전합니다. 나다나엘이 “나사렛 같이 후진 동네에서 어찌 선한 것이 날 수 있냐”고 반문했을 때, 빌립은 “일단 와서 보라”고 해서 나다나엘이 예수님을 찾아 갑니다. 그리고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합니다. 요한 복음 4장에서는 사마리아 여자가 예수님을 믿고 나서,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에 들어가 동네 사람들에게 전도를 합니다. “와서 보라 이 분이 바로 그리스도가 아니냐”라고 전도합니다. 이 많은 사람들이 전한 메세지는 한결 같이 “예수님이 메시야이시다. 내가 그 예수님을 만났다 “ 입니다. 너무 간단합니다. 우리는 전도할 때 신학적인 지식이나 어려운 내용을 전할 필요가 없습니다. 믿지 않을 사람은 아무리 설명을 잘해 줘도 믿지 않고, 믿을 사람은 예수님의 십자가만 얘기해 줘도 믿습니다. 내가 믿고 있는 예수님의 십자가만 전하면 됩니다. 고린도전서에서도 보았듯이 십자가의 도가 우리의 전할 메세지입니다. 그리고 “와서 보라”고 하며 사람들을 예수님께로 인도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예수님께서 육신적으로 이 땅에 계셨으니까 직접 만날 수 있었고, 지금은 예수님을 구세주로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면 성령님이 우리 마음에 들어 오십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예수님을 개인적으로 만날 수 있도록, 마음에 영접할 수 있도록 도와 주는 것이 전도입니다. 저희들이 읽은 요한 복음에 나오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의 제자가 되도록, 직접적으로 역사하신 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런데 그 중간에서 예수님에 대해 얘기하고 전달한 자는 먼저 믿은 그리스도인들이었습니다. 세례요한이 안드레와 빌립에게, 안드레가 베드로에게, 빌립이 나다나엘에게, 사마리아 여자가 동네 사람들에게, 이렇게 줄줄이 복음이 전해지는 모습이 너무 아름답습니다. 저도 요즈음 복음을 많이 전하지 못하고 있어서 이 말씀이 많은 도전이 되었습니다. 전도가 중요한 것도 알고 전도를 하고도 싶은데 전도를 못하는게 현실입니다. 소원하고 바라고만 있으면, 전도란 늘 미래의 소원일 뿐입니다. 전도할 사람이 있다면, 당장에 실천 행동이 가능한 약속부터 하시는 게 좋습니다. 식사 초대 약속을 하셔도 좋고 아니면 간단한 차 대접도 좋습니다. 식사나 차를 드신 후에, 복음에 대해서 좀 나누고 싶은데 괜찮은지 물어보고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 다른 일은 저희들이 신속하게 하는데 전도는 자꾸 미루게 됩니다. 어색하고 민망하니까요. 차일 피일 미루다 보면 전도는 늘 미래의 소원에 머무릅니다. 그래서 저는 다른 일은 좀 천천히 하는 편인데, 전도는 서두르는 편입니다. 안드레, 빌립, 사마리아 여자는 전도해야지 하며 소원만 하고 기다린게 아니라 행동으로 직접 찾아갔습니다.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에 들어갔습니다. 그렇다고 생활을 내팽개 치라는 뜻은 아닌 줄 다 아시지요.  너무 뜸 들이지 말고, 만날  약속을 재 빨리 한다든지 해서 일을 저지르고 나면, 복음을 전하게 됩니다. 이 생각은 저의 경험에서 나온 것입니다. 다른 분들은 그러지 않고도 전할 수 있다면 더 좋겠지요. 어느 방법으로든지 복음만 전해지면 됩니다. 믿지 않는 자들은 “미련하다 어리석다”라고 생각하는 십자가의 도를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이고 하나님의 지혜로 믿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전도의 미련한 것을 통해 사람들에게 구원의 기쁜 소식을 실제로 전하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되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제일 먼저 복음을 전할 대상은 가족입니다. 물론 우리 교회에 나오시는 분은 온 가족이 복음을 알고, 믿고 있어서 감사한데요. 이미 믿고 있더라도 우리 아이들에게 부모님이 복음을 한번 더 실제로 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교회에서 선생님을 통해서 들은 복음이지만 부모님으로 부터 직접 듣는 복음은 또 다른 의미를 줄겁니다. 또한 복음은 듣고 또 들어도 싫증나지 않고 도리어 영적 힘을 더 해 줍니다. 저는 우리 아이들이 미국 나이로 세 살이 되면 복음을 쉽게 설명해 주고 예수님을 영접하는 기회를 가지도록 했습니다. 세 살이 되면 말귀를 다 알아 듣거든요. 그리고 나중에 중학생이 되면 다시 한번 복음을 설명하고 구원의 확신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 주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세 아이 모두가, 신앙 문제로 힘들어 한다거나 방황하는 일 없이 잘 자라 주어서 감사할 뿐입니다. 전도하는 연습을 제일 먼저 가족에게 해 보심으로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작년Thanksgiving때 아이오아 주에 있는 제 남동생 집을 방문했는데요. 오랜 만에 만나는 조카들에게 복음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물론 두 아이 모두 예수님을 믿는 아이들이지만, 고모인 제가 가장 귀하게 여기는 복음을 조카들과 나누고 싶었습니다. 복음은 한번 들었다고 다 이해가 되는게 아닙니다. 자꾸 들어야 합니다. 우리는 주로 “다 알겠지, 교회를 그렇게 오래 다녔는데 설마 복음을 모르겠나” 하며 복음 전할 기회를 자주 잃어 버립니다. 대충은 알고 있지만 정확하게 모를 수도 있고 지식적으로는 알지만 예수님을 개인의 구주로 영접한 적이 없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조카들이 둘 다 대학생이라 저희들이 잘 알고 있는 다리의 예화를 사용해서 복음을 나누었습니다. 두 아이 모두 너무 좋아했습니다. 죄사함에 대해서도 더 확신하게 되었고 성경 읽기도 권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과 매일 교제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나누었습니다. 복음 전하는데 가장 방해되는 요인은 바로 민망함입니다. 다른 얘기는 아주 쉽게 할 수 있는데 복음은 민망합니다. 조카들에게 학교 얘기하기는 쉬운데 복음을 얘기할려면 민망하고 망설여집니다. 저는 그럴 때, “하나님께서 이 일을 기뻐하신다”고 생각하면 용기가 생깁니다. 그리고 복음이 그 사람에게 얼마나 좋은 선물인지, 복음을 받아 들이게 되면 얼마나 큰 복인가를 생각함으로 민망함을 극복합니다. 복음 전하는 것을 이상한 행동이라 생각하지 말고 일상 중의 하나로 자연스런 대화 중의 하나라고 우리 자신의 생각부터 바꿀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복음 뿐만 아니라 신앙 얘기도 잘 안 하게 됩니다. 신앙 얘기를 교회에서만 하고 집에서는 전혀 안 한다면 신앙이 형식적이 되기 쉽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은 우리 삶의 전체이잖아요. 그러니까 “밥 먹으라”는 일상 용어와 똑 같이 “오늘 성경 읽었니?” 라고 물어 보는 것이 자연스러워질 수 있도록, 일단 어색함을 극복하고자 노력해야 될 것 같습니다. 신기하게도, 복음, 신앙 얘기는 우리가 의지적으로 노력하지 않으면 함구하게 됩니다. 저 역시도 우리 아이들에게조차  신앙 얘기하는게 쉽지 않아서 그 장벽을 깰려고 애썼던 기억이 납니다. 이렇게 중요한 복음이나 신앙이, 약간의 어색함이나 민망함 때문에, 우리 입에서 나오지 않는다면, 진짜 마귀가 너무 좋아할 것 같습니다. 지금 이 시간에 전도할 분이 생각나시면, 기도하시면서 약속도 잡고 해서 실천해 보시기 바랍니다. 한 번 두번 하시다 보면 전도가 우리의 일상이 될 것입니다.


조금 전에도 말씀 드렸듯이, 전도를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실제로 현장에서 한 번 전해 보는 것입니다. 제가 이 세상 태어나서 처음으로 전도 했던 날은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 날의 경험이 제 인생을 바꾸어 놓았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제가 20살 쯤 되었을 겁니다. 네비게이트 선교회에서 전도하러 나가는 날이었습니다. 학교 도서관에 가서 아무나 한 사람을 만나서 전도를 하라고 했습니다. 아는 사람도 아니고 생판 모르는 사람을 찾아가서 전도를 하랍니다. 그 당시 저는 지금의 성격과 많이 달랐습니다. 남 앞에서 말도 잘 못하고 부끄럼을 많이 타는 사람이었습니다. 솔직히 도망가고 싶었습니다. 도망간다고 해서 누가 뭐라고 하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내 마음 깊은 곳에서, “배워야 한다, 지금 배우지 않으면 기회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저를 도망가지 못하게 했습니다. 진짜 벌벌 떨렸습니다. 머리가 하얘진다는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열심히 책상에서 공부하고 있는 한 여학생에게 “잠시 시간 좀 내어 줄 수 있느냐?”고 물어 봤더니, 신기하게도 따라 나오더라고요. 휴게실의 소파에 앉아서, “나는 크리스찬인데, 예수님에 대해서 얘기 좀 할려고 한다”니까 하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 동안 연습해 두었던 다리의 예화를 사용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지금 같았으면 상대방의 영적 상태가 어떤지도 살펴보고 했을텐데, 너무 긴장한 나머지, 전하는 내용에만 집중하느라 상대방의 반응은 전혀 신경쓰지도 못했습니다. 그런데 너무 신기하게도, 그 학생은 다 듣고나더니, 예수님을 영접하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믿어지지가 않았습니다. 전혀 숙달되지 않은 어설픈 저의 전도를 받고, 그것도 처음 보는 사람의 전도를 받고도 멀쩡한 대학생이 예수님을 믿겠다는 겁니다. 그 날의 그 감동이 지금도 전해지는 것 같습니다.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한 거지요. 지금까지도 전도를 꾸준하게 할 수 있는 것도 그 날의 현장 경험이 밑바탕이 되었다고 저는 확신합니다. 우리 형제 자매님들께서는 전도할 준비가 아주 많이 되어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벌써 전도를 해 보신 분도 계십니다. 가정에서 아이들에게 전해 보는게 시작이 될 수도 있습니다. 나중에는 아내, 남편, 부모님, 형제들에게 전하고요. 점점 더 전도 대상을 넓혀 가실 수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3장 15절 말씀을 아시지요?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전도하기 전에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다 아시겠지만 기도입니다. 어떤 분에게 복음을 전하고 싶으면 그 분을 위해서 미리 기도합니다. 그 분의 마음이 열려서 예수님을 믿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믿게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확인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기도하고 전했다고 해서 모두가 믿게 되는 것은 아니라는 건 다 아시지요. 나중에 그 분이 믿을 수도 있으니까 너무 실망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리고 전도를 위해서는 전도자의 삶의 영향 또한 큽니다.  우리 그리스도인 모두가 전도자입니다. 전도자의 삶의 방식은 주는 삶입니다. 가장 중요한 복음을 이야기해 주고, 결국은 하나님의 사랑을 줘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완벽할 수 없다는 것은 저희들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받는 것 보다는 주는 걸 더 좋아하고 남에게 섬김을 받기 보다는 남을 섬기는 삶의 방식이 될 때, 전도의 열매도 풍성해 진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게 됩니다. 전도하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먼저 기도하면서 그 사람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기본입니다. 사이가 나쁘면 전도가 불가능합니다. 그러니까 그리스도인은 복음을 위해서 항상 섬기는 태도가 중요한 것 같애요. 애기를 낳았다면 미역국도 끓여 주고, 도움이 필요하다면 주님의 사랑으로 겸손하게 도와야 합니다. 로마서에서도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고 하셨습니다. 한국 사람이 드문 미국에 살면서 복음을 전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한국 사람에게는 당연히 복음을 전해야 되겠고, 주변에 우리와 같이 이민이나 유학으로 온 외국인이 있으면 전도하는 게 참으로 귀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선교사님들은 일부러 선교하러 멀리도 가시는데, 우리는 가까이서 중국인, 일본인, 유대인, 이란 사람, 리비아 사람등 다양한 나라 사람들에게 전도할 수 있으니까, 복이라는 생각입니다. 몇 년 전에 학교에서 제가 한 중국 여자 분을 만났습니다. 어느 날 그 사람과 대화를 하고 있었는데, 저 보고 이런 말을 했습니다. “너는 말하는게 참 nice하다” 그 소리를 듣는 순간, “이 사람에게 복음을 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학생은 주변 사람들이 모두 싫어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제가 말 상대를 잘 해 주니까 호감을 가진 것 같았습니다. 매사에 까다롭고 잘난 체 하니까 친구가 없이 늘 혼자였습니다. 저는 그 사람을 위해서 매일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주님의 사랑으로 섬길려고 노력했습니다. 성격이 굉장히 특이해서 같이 어울리는게 쉽지 않았습니다. 인내가 필요할 정도였습니다. 옆의 사람들은 저에게, “그 사람하고 친구하지 말아라”고 저를 위해서 충고해 주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한 학기가 끝나는 날, Chef Wang’s 중국 식당에서 점심 식사를 같이 하기로 약속을 잡았습니다. 이렇게 약속을 신속히 해야 진전이 있습니다. “나중에 하지” 하다가는 못합니다. 약속한 날, 식사 후에 우리 집에 와서 차 한잔 하면서 “내가 크리스찬인데 성경에 대해서 얘기 좀 하고 싶다”고 하니까, 자기 여동생 부부도 크리스찬이라고 하면서 좋아했습니다. 제가 애용하는 다리의 예화로 복음을 전했습니다. 다 전하고 나니까 이런 말을 합니다. “너가 설명하는 기독교는 왜 이리 쉬우냐? 그 전에 나도 믿고 싶어서 동생 부부가 다니는 중국인 교회도 가 보고 나름대로 노력했는데, 일괄성이 없고 뭔가 어렵고 복잡해서 포기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건 너무 간단하고 쉽다”면서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그리고 자기 동생 부부에게도 얘기해 줘야겠다고 하면서 너무 기뻐했습니다.  네비게이트 교재1권도 함께 공부했습니다. 그 후에 비자 문제로 중국에 돌아갔다고 들었습니다. 제가 이런 경험담을 길게 설명하는 이유는, 전도하실 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해서 입니다. 실은 전도하시게 되면 그 때 그 때 상황에 따라 자연히 지혜도 생기고, 방법도 본인의 스타일에 맞게 개발이 될 것입니다. 섬김의 삶을 통해서 전도의 열매를 맺는 경험들이 많아지시길 바랍니다.


복음을 전달하는 방법도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저는 몇 십년 전에 배운 방법을 아직도 사용하고 있습니다. 방법이 사람을 믿게 하는게 아니니까, 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방법을 잘 개발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어린이들을 위해서는 글씨 없는 색지를 사용하신다거나 cube를 사용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Cube는 연세 드신 할머니 할아버지를 위해서도 좋을 것 같고요. 애기가 있어 좀 산만한 분위기에서 젊은 여자분에게 전할 때, 저는 ‘하나님의 선물인 영생’을 잘 사용합니다. 시간적 여유도 있고 좀 논리적인 분들에게는 종이 한 장에 다리의 예화를 그려가며 전하는게 제일 좋은 것 같습니다. 다시 한번 말씀 드리지만, 내가 설명을 잘 했다고 되는 게 아님을 잊으시면 안 됩니다. 하나님이 하실 수 있도록 기도하며 성실하게 전달하면 됩니다. 마지막으로 강조하고 싶은 것은 무슨 방법을 사용하든지 꼭 성경 말씀을 빠뜨리면 안 됩니다. 말씀을 통해서 성령님이 역사하시니까, 말씀을 상대방이 읽도록 하고 우리는 보충 설명만 하면 됩니다.
제가 말씀을 준비하면서 하나님께 많이 죄송스러웠습니다. 너무 바빠서 전도하는 일에 많이 소홀했음을 고백합니다. 변명일 수도 있지만 주변에 한국 사람이나 외국인이 거의 없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아직은 미국 사람에게 꼭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마음이 없습니다. 나중에 그런 마음이 생기겠지요. 주변에서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는 사람이 제한되어 있다면, 우리가 좀 더 적극적으로 전도 대상을 찾아서 나가야 한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교회 차원에서 전도를 위한 프로젝트를 준비할 수도 있고요. 우리가 한국을 한 번씩 방문할 때, 전도할 사람을 미리 생각해서 기도로 준비하다가 복음을 전한다면, 참으로 보람된 한국 방문이 될 것입니다.


오늘은 많이 산재된 듯한 말씀이었는 것 같습니다.  말씀을 요약해 보겠습니다. 전도 할 사람을 위해서는, 먼저 기도로 준비하고 섬김을 통한 좋은 관계가 중요합니다. 물론 관계 형성이 되기도 전에, 처음 만나서도 복음을 충분히 전할 수 있겠지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일 대 일로 개인적으로 만나 하나님의 말씀을 사용해서 십자가의 도를 전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이 사람이 믿겠나” 라고 걱정하지 마시고 입을 열어 복음을 전하시면, 전도의 미련함을 통해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보시게 됩니다. 전도의 민망함이나 어색함에서 빠져 나오려면, 우선 내 집에서 남편이나 아내에게, 그리고 자식에게 복음이나 신앙에 관해서, 편하게 이야기하는 분위기를 만드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바쁜 삶 속에서 남의 영혼을 위해 시간과 에너지를 쓴다는게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이고 영원한 나라에 관한 일이니까, “내가 무엇을 위해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가?” 자문도 해 보시고, 전도에 조금씩 관심을 가지셔서, 전도의 열매도 맺으면서 복되게 사시는 형제 자매님이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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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한국어설교
    Korean Sermon
  2. 영어설교
    English Sermon
  3. 목사님과의 대화
    Dialogue with Pastor
slogan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고린도전서 15장 58절)

"Therefore, my dear brothers,
stand firm.
Let nothing move you.
Always give yourselves fully
to the work of the Lord,
because you know that
your labor in the Lord is
not in vain."
(I Corinthians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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