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풍성한 은혜

에베소서 1:3-14



사랑하는 형제님 자매님, 안녕들 하십니까?
최근 한국에서는 ‘안녕들 하십니까?’ 라는 대자보가 사회적인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질문에 대한 대부분의 대답들은 ‘이러 이러해서 안녕하지 못합니다’라는 내용이 많은 것 같습니다. 취업하지 못해서 안녕하지 못하고, 경제적으로 어려워서 안녕하지 못하고, 남들이 내 맘 같지 않아서 안녕하지 못하고, 이것이 맘에 안들어서 안녕하지 못하고… 여러 가지 이유가 있어서 안녕하지 못합니다. 개인적으로도 문제가 많고, 사회적, 국가적으로도 맘에 안들고, 아무튼 안녕하지 못한 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저도 제 삶과 주위를 한번 둘러 보았습니다. 마음은 20대 청년인데 몸은 40대가 되어서 안녕하지 못하고, 또 왠지 저의 삶이 그리 여유가 없어보여서 막연하게 안녕하지 못합니다.
저의 영적 상태는 어떻습니까? 예수님을 더 잘 알고 싶고 하나님의 말씀을 더 공부하고 싶은데, 시간이 없다 몸이 피곤하다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면서, 경건의 시간을 가지지도 않고 성경도 읽지 않고 그러다 보면 다시 마음이 무거워지고 부담도 생기고.. 그래서 안녕하면 안될 것 같습니다.
왠지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것이 힘에 겹다고 스스로에게 자조섞인 쓴웃음만 짖고 앉아 있어야만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또 가만히 생각해 보면, 제 삶이 그리 나쁘지 만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오히려  감사할 일들이 너무나도 많은 것을 깨닫게 됩니다.
성경 말씀 안에서 늘 자극이 되고 모범이 되는 아내가 옆에 있어 주어서 진심으로 감사하고, 십대 아들은 그리 크게 속도 썩이지 않고 별 탈없이 잘 커주고 학교 생활도 잘 해줘서 고맙고, 미국으로 건너와 생활한 지난 11년동안 학업과 취업 등의 모든 일들이 큰 무리없이 순리대로 풀려나간 것도 감사하고, 또, 무엇보다도 제 마음에 있던 자존심과 자부심이 성경 말씀을 알아 나가면서 점점 없어 지고 반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 공부하는 것이 즐거워지는 하루 하루가 감사할 따름입니다.
내가 왜 이처럼 감사해야 마땅한 것들을 오랜 기간동안 너무나도 당연히 생각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감사하지 못했던가 하는 생각에 죄송하기도 하고, 때문에 이처럼 감사할 줄 모르는 저란 사람을 사랑하시고 오래 참아주시는 하나님 아버지께 그저 감사한 마음이 들 뿐입니다.
저에게 감사할 수 있는 마음이 생기기 까지 상당 기간이 걸렸던 것 같습니다. 올해로 제가 새생명교회에서 말씀으로 훈련받고 성장한지 11년째가 되는데, 지금도 기억나는 것은, 처음 목사님과 함께 새신자반을 두 달정도 하는 과정에서 따로 영접 기도를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쑥스럽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내가 가톨릭 신자로 세례받은지 15년이 넘게 지났는데 굳이 지금에 와서 따로 영접 기도를 하는 것이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것 같고, 아무튼 영접기도를 하지 않았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가톨릭에서의 종교 생활이 오히려 저에게는 걸림돌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복음을 선포하셨을 때에 많은 유대인들이 좋은 소식을 들었지만, 유대의 율법과 전통에 발목을 잡힌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복음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오히려 복음이 걸림돌이 되어 오늘날 까지 넘어져 있는 것이 남의 일 같지 않습니다. 제가 그랬습니다. 가톨릭에서 배운 얋은 신학적 지식과, 가톨릭의 세례와 견진을 받았다는 자존심 때문에, 저는 스스로가 죄인이고, 또 예수님이 이런 죄인을 위해 대신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묻히시고 다시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입밖으로 당당하게 고백하지 못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으로 부끄럽고 자기 중심적인 연약한 영혼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처럼 나약하고, 예수님 보다 자신을 사랑하고 자존심을 세우던 제가 조금씩 변해 가기 시작했습니다. 어느날 갑자기 뭔가 충격적인 경험을 해서도 아니고, 제 삶에 결정적인 사건이 있어서 변하기 시작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갑자기 가슴이 뜨거워지거나 성령님이 확 제 머리위에 나타나셔서 빛을 부어 주시거나 한 것도 아닙니다.
저에게 변화를 가져다 준 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말씀, 성경을 공부해 나가면서 부터였습니다. 이것도 스스로 결심하고 스스로의 힘으로 성경을 오늘부터 공부해야지.. 이런 식으로 결심하고 시작하게 된 것이 아닙니다. 제 삶에 소중한 분들이 저에게 영적으로 성숙한 모범을 보여 주시고, 이를 통해 인도해 주신 것입니다.
가장 먼저 감사할 분은 제 아내 입니다.
저희 가정에서 가장 먼저 영적으로 성숙해가기 시작한 것은 저의 아내입니다. 집안이 조용하고, 배도 고프고 해서, 뭐하나 싶어 찾아보면, 혼자서 소파에 앉아서 성경을 읽고 있는 모습, 처음에는 읽나보다 그냥 생각했는데, 그런 모습을 한달을 보고 한해를 보고, 해를 넘겨 보다 보니, 이 자매가 정말 성경에 빠졌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 또 뭐가 그렇게 재미있나? 한는 궁금한 생각도 들고, 이왕 할꺼면 같이 하자고 물어라도 보면 좋을텐데 저에게는 권하지도 않고 혼자서 꾸준하게 읽어 나가는 모습이 신기하기도 하고 질투가 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지나가는 투로 ‘재미있냐?’라고 물어 보았습니다. 돌아 오는 대답이 단 한마디 ‘응’ 이었습니다. 뭐가 그렇게 재미있냐고 물었더니 성경 말씀이 어디를 읽어도 예수님의 복음을 말씀해 말해 주는 것이 참으로 신기하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상식적으로 당연한 거 아니냐고 뚱하니 대답해 주고는 속으로는 ‘진짜 재미있나 보네’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 때에 자매가 자신은 두번째인가 세번째 읽고 있다고 하면서 저에게도 성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한번 읽어 보라고 권하였습니다. 성경을 이곳 저곳 읽기는 했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일독을 한 적은 없었던 때였습니다. 그리고 성경을 잘 읽지 않았던 핑계는 문체가 고어체라는 점이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읽고 있는 개역한글판이나 개역개정판의 문체는 지금도 생소합니다. 왜냐하면, 기존에 제가 익숙해져 있던 성경은 현대어로 번역된 가톨릭 성경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자매가 저에게 권해준 성경판은 ‘현대인의 성경’이었습니다. 문체가 익숙하니까 그리 거부감이 들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또 기차를 타고 출퇴근을 하는 시간동안 다른 방해 없이 집중해서 성경 말씀을 접할 수 있다는 것도 큰 도움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아무튼 자매의 성경 읽는 모습을 보면서 저도 어느새 성경을 사모하는 마음이 조금씩 조금씩 싹이 텃던것 같습니다.
제가 영적으로 성장하는 데에 있어서 목사님의 설교와 새생명교회의 성경 공부를 빼 놓을 수가 없습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목사님들은 절기 또는 사회적 문제와 연관된 그때 그때의 주제로 설교를 많이들 하십니다. 그와 대조적으로, 김좌근 목사님은 성경말씀을 한절 한절 강해설교를 하십니다. 두 설교 방법에는 나름대로의 장단점이 있는것 같습니다. 그러나 대부분 동의하는 것은 강해 설교를 준비하는 것이 더 많은 노력을 필요로 한다는 것입니다. 또 어떤 신학자들은 강해 설교를 하면 때로는 별로 전할 메세지가 없다는 것을 문제점으로 말하곤 합니다. 예를 들면, 민수기는 이스라엘 민족 머릿수만 세는데, 이를 어떻게 설교로 풀어나갈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신명기는 유대인의 끝도 없는 율법을 장황하게 적어 놓았는데, 신약시대를 살아가는 오늘날의 성도들에게 어떻게 효과적으로 풀어나가는가 하느 문제 입니다. 제가 옆에서 지난 11년간 지켜보면서 배운 것은, 김좌근 목사님은 성경의 어떤 부분을 설교하시든 간에 결국에는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 복음으로 결론난다는 사실입니다. 절대로 삼천포에 빠지신 적이 없다는 놀라운 사실입니다.
말이 쉽지, 오늘날 많은 분들의 설교가 예수님과 당신의 복음은 설교의 간을 맞추는 보조 양념 정도로만 취급하고, 복음과는 전혀 상관 없는 주제들로 소중한 예배의 시간을 소비하고 있습니다. 소위 삼천포에 빠지는 설교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소위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라고 세우심을 받은 목자가 자신의 양떼를 예수 그리스도께로 인도할 생각은 안하고, 스스로 심리학자가 되고 사회 평론가가 되고 때로는 행복 전도사가 되고 웰빙 전문가가 됩니다. 때로는 십일조를 이야기 하고 특별 헌금, 특히 성전 건축 헌금이라는 장황한 투자 상품을 이야기 하면서, 개인 자산 관리인 또는 투자 상담사가 되기도 합니다. 십일조를 이렇게 투자하면 백배 천배 수익률을 높일 수 있다고 자신있게 말합니다. 어떤 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것이 아니라 뜬금없이 오늘 이곳의 암환자 몇분이 방금 치유되었네, 디스크 걸린신도 몇분이 치유되었네 이럽니다. 더 심한 분은 자동 이체 번호를 불러주면서, 신용카드로 헌금하실 분은 카드 유효기간과 이름을 정확하게 적어 달라는 친철한 안내방송까지 합니다. 성경을 가르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이런 분들이 나중에 예수님을 뵈올때 ‘제가 당신 이름으로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였습니다.’라고 말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이 뭐라고 대답하실지 이미 있습니다.
o 마태복음 7:23.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교회의 영적 지도자, 즉 오늘날의 목사와 교사 그리고 교회의 직분을 받은 자들은 하나님이 세우신 자들 입니다. 하나님이 왜 세우셨습니까?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받들어 행하라고 세우신 것 아닙니까?
그러면 도대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십일조 받아서 하나님 계좌에 이체하는 것입니까? 삼천억 사천억짜리 건물을 지어서 하나님이름으로 등기이전 하는 것입니까? 도대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바로 하나님이 택하신 백성을 예수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면, 뭘로 어떻게 인도해야 합니까? 이렇게 안하면 지옥간다고 협박으로 인도합니까? 내말대로 하면 디스크도 고쳐주고 암도 고쳐준다고 치유의 은사로 끌어 모아야 합니까? 아닙니다. 적어도 제가 아는 하나님은 당신의 말씀, 즉 성경으로 당신의 백성들이 당신을 알아 나가기를 원하십니다. 성경이 증언하는 하나님은 우리가 당신의 사랑하시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장해 나가기를 원하십니다.  바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도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참으로 다행입니다. 우리 새생명교회에 하나님의 말씀만으로 성도들을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인도하는 것을 유일한 소명으로 알고 있는 사역자가 있습니다. 참으로 다행입니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뜨거운 경험이나 체험을 한 것도 아닙니다. 계시를 받거나 환상을 본 것도 아닙니다. 이적과 기적을 사모하거나 원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매주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기쁜 소식, 그리고 연중 이어지는 성경 공부, 때로는 바쁘다는 핑계를 대기도 하지만, 그래도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배울수 있고, 또 하나님, 예수님, 그리고 성령님에 대해서 더 잘알아 나갈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우리 교회 공동체 안에서 생명력있게 역사하고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말씀을 통해서 피조물의 겸손함을 배우고 또 사모하게 되었습니다.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풍성한 은혜를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비록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동안, 인간적으로 가끔은 안녕하지 못할 때가 있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이 땅에서의 삶보다 훨씬 좋은 삶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이 저에게 큰 위안이 됩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당신은 지금 당장 가장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지금 살고 있는 이 세상에서 풍요와 번성과 행복을 만끽할 자격이 있습니다’라고 말한다면 성도님들은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대표적인 사람이 조엘 오스틴 입니다. 그가 지은 ‘긍정의 힘’이라는 책이 서점가를 강타하고 많은 크리스챤들에게 호응을 얻었습니다. 저희 교회도 3,4년 전에 이 책을 몇권사서 청년반에서 함께 읽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은 지금 이순간 가장 행복해 질 자격이 있습니다. 성령님께 간구하십시오. 당신이 원하고 기도하면 지금 당장 모든 일들이 풀릴 것입니다. 부자가 되고, 승진하고, 병이 낳고, 또 세상 부러울 것 없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예전의 저라면 이렇게 말했을 것 같습니다. 저도 그렇게 행복해 지고 싶습니다. 나름대로 착하게 살아왔고 남에게 피해도 주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때문에 저도 행복해질 자격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하면 행복해 질 수 있습니까? 부족함 없이 평안한 삶을 원합니다. 집도 좋은 집에서 살고 싶고, 차도 좋은 차를 몰아보고 싶고, 인생을 즐기며 여행도 다니고, 또 사회와 교회에 기부나 봉사도 좀 하면서, 그렇게 편하게 살고 싶습니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살수 있습니까? 비법이 뭡니까? 예전의 저라면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형제님 자매님,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이 세상이 만약 가장 행복하고 축복받은 삶이라면, 결국 장차 앞으로 다가올 시간은 꺼꾸로 곤두박질 치는 일만 남은 것 아니겠습니까? 만약 이 세상에서 모든 좋은 것들을 누리며 살고 있다고 생각하신다면, 앞으로 다가올 날들은 어려움만 남았다는 말 아닙니까? 간단하게, 죽어서 지옥간다는 말 아닙니까?
진정한 믿음의 성도에게 있어서, 지금 살고 있는 이 땅에서의 삶은 결코 최고의 삶, 가장 행복한 삶이 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죽어서 하늘나라에 갈 때에야 비로소 예수님을 뵐 수 있고, 또 하늘의 좋은 것들과 영광을 누리는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은 복음을 싫어 합니다. 이 세상은 믿음의 성도를 별종을 보는 것처럼 취급합니다. 이 세상은 하나님의 말씀에 귀기울이지 않습니다. 세상의 풍조는 이미 악함이 가득합니다. 모든 사람은 끊임없이 죄를 지어가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세상이 어떻게 믿음의 성도에게 가장 행복한 삶이 될 수 있다는 말입니까? 말도 안되는 거짓 교사의 가르침입니다.
성경 말씀은 여러 군데에서 증언하십니다. 성도는 핍박 받고 세상의 권세로 부터 박해를 받을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그리고 가르쳐 주십니다. 이러한 어려움들을 인내하고 받아드리라고 가르쳐 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해서 받는 핍박이야 말로 진정한 하늘나라에 투자하는 것이라고 가르쳐 줍니다.
예수님은 참으로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때문에 고난과 고통을 받을 당신의 성도들을 위해 참으로 좋은 것들,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가 우리에게 있음을 선포하셨습니다. 이처럼 악한 세상을 살아가는 성도들이 희망을 잃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평화와 기쁨을 누릴 수 있도록 안배하신 것입니다. 오늘 함께 읽은 에베소서 1장의 말씀은 이처럼 풍성한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증언하는 소중한 복음의 말씀입니다.
2.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2절에서, 사도 바울은 크리스챤이 원하는 가장 아름다운 인사를 합니다. 바로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로 부터의 은혜 (Grace)와 평강 (Peace)입니다.
은혜 (Grace)는 오직 하나님 아버지에게서만 나옵니다. 즉 하나님 아버지의 크신 은혜는 우리가 구원받을 수 있게 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입니다.
평강 (Peace)은 우리가 이제 더이상 죄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공의로우신 아버지 하나님 앞에 의인의 옷을 입고 나아갈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즉,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에게 더 이상 원수가 아니고,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과의 평강은 우리가 노력하고 원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입니다.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과 평강한 관계가 되기 위해서는, 우리가 죄인이었음을 고백하고, 우리 힘으로는 도저히 사망의 죄에서 벋어날 수 없음을 시인하고, 또 우리 죄를 대신하여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다시 부활하심으로 죄의 삯인 사망을 영원히 이기셨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오직 예수님을 우리의 구세주로 믿음으로만 우리는 의인이 되고 하나님과 평강 (또는 화평)한 관계를 맺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크신 은혜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과 화평한 관계가 되는 것입니다. 때문에, 사도 바울이 에베소 교회에 있는 성도들에게 아버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의 은혜와 평강을 기원하는 것은 가장 축복된 인사입니다.
3.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3절에서, 아버지 하나님은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이미 주셨습니다. (헬라어 과거형)
o 로마서 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o 야고보서 1:17.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o 베드로후서 1:3.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이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
여기에서의 신령한 복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모든 물질적 비물질적 은혜의 결과물을 의미합니다. 즉, 성도가 받는 복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반드시 사업이 번창하고 세상의 영화를 누리고 부자가 되고 병이 치유된다는 의미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을 누릴 수 있게 되고, 모든 것이 협력하여 결국에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아름다운 선한 결과를 가져온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에 따라서 여러 은사를 허락받고 교회를 위해 봉사하는 것일 수도 있고, 영적으로 성장하고 예수님을 더 많이 알아가는 기쁨을 만끽할 수도 있고, 과정에서 재물이 따라올 수도 있고, 모범이 되는 성도의 가정을 이루게도 되고, 또 심신의 건강이 주어질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결과가, 우리의 능력만으로 이루어 지는 것이 결코 아니며, 궁극적으로 모든 은혜의 원천이신 아버지 하나님의 긍휼하심 때문이라는 것을 기억하기를 원합니다.
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4절에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세 전에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시고, 우리를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셨다고 말합니다. 공의로우신 하나님 앞에 서기 위해서는 우리도 온전히 의로워야 합니다. 그러나, 모든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죄의 속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스스로의 노력이나 열심으로는 절대로 의로워 질 수 없고, 결국 사망에 이를 뿐입니다. 그러나 긍휼하신 하나님은 독생자의 죽으심을 우리 모든 죄인의 사망으로 인정하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을 통해서 당신의 백성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될 수 있도록 치밀한 구원 계획을 실행에 옮기셨습니다. 사도 베드로와 마태 복음기자의 증언이 우리에게 힘을 줍니다.
o 베드로전서 2:9.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o 마태복음 24:31.  그가 큰 나팔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의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5절에서, 하나님의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 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거룩함을 함께 물려받는다는 것을 뜻합니다. 때문에, 믿는 자들을 성도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6.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6절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우리에게 합당한 자격이 있어서 입니까?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될 자격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너무나도 사랑하셔서, 당신의 독생자의 대속을 보시고 우리를 당신의 아들로 삼아 주셨습니다.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는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합니다. 또, 우리가 받은 구원 하나님이 은혜로 거저 주신 것이기에, 우리가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7.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7절에서, 속량 곧 죄사함을 받기 위해서는 죗값을 치러야 합니다. 죗값은 죄인의 사망입니다. 죄인이 죄를 사함받기 위해서는 죽는 수밖에 없습니다.
o 레위기 17:11.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제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죄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
o 히브리서 9:22. 율법을 따라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하게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사랑하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를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우리의 죗값으로 인정하여 받아 주셨습니다. 우리가 죄와 사망의 종이었을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피로 우리를 사시고 하나님 앞에서 의인으로 설 수 있도록 우리의 신분을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o 로마서 3: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25.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o 베드로전서 1:18.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19.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7절에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우리에게 당신의 은혜를 넘치도록 부어 주시며 죄사함과 더불어 영생에 이르게 합니다.
o 마태복음 26:28.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o 로마서 5:20. 율법이 들어온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21.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한 것 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라 
8. 이는 그가 모든 지혜와 총명을 우리에게 넘치게 하사
9.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신 것이요 그의 기뻐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10.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그리고 8절에서, 우리는 모든 지혜와 총명을 넘치게 받았다고 말합니다. 바로 9절에서 말하는 ‘그 뜻의 비밀’ 즉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복음의 신비를 이해할 수 있는 영적 지혜와 총명함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아버지의 은혜에 힘입어 영적 지혜와 총명함을 허락받았습니다. 우리에게 허락된 영적 지혜와 총명함은 혼탁하고 악한 세상을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들인데, 왜냐하면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께서 때가 차면 당신의 공의로우심을 전 우주에 나타내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하나님 아버지의 심판입니다.
11. 모든 일을 그의 뜻의 결정대로 일하시는 이의 계획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선택받은 성도는 하나님 아버지의 은혜를 넘치도록 받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하늘의 모든 좋은 것들을 상속받게 됩니다. 이 모든 구원의 과정에서 우리가 자랑하거나 내세울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아버지께서 자격이 없는 우리를 택하여 주시고 구원하여 주시는 것은 우리의 열심이나 노력으로 얻어진 것이 아니라, 바로 전능하신 주권자이신 하나님 아버지의 계획과 결정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구원은 하나님께서 정당하게 행사하시는 당신의 주권입니다.
12. 이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13.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14. 이는 우리 기업의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속량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로 결정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한정된 인간의 지혜로 하나님의 깊으신 뜻을 모두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하나님 아버지만이 홀로 높으시고 홀로 영광받으시는 분이라는 진실을 기억한다면,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를 택하시고 자신의 백성으로 삼아 주신 이유를 조금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12절과 14절에서,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기 위해 우리를 불러주시고 구원하여 주신다고 말합니다.
13절에서, 우리가 거듭나는 과정에서 경험하게 되는 것들을 알수 있습니다. 첫째는, 우선 복음을 전해 들어야 합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구원을 받기를 원한다면,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o 로마서 10: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둘째는, 전해 들은 복음을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복음 말씀을 힘있게 전하면,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되고, 말씀을 들으면 예수님을 믿게 되고, 또 믿게 되면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게 됩니다.
o 요한복음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로마서 10장에서 사도 바울은 이 과정을 조금 더 자세하게 설명하였습니다.
o 로마서 10:14. 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15.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여기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주여 주여”라고 입으로만 부르는 것은 구원에 이르지 못한다는 것을 분명히 알 필요가 있습니다.
o 마태복음 7: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기 전에 믿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주님으로 믿을 때에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게 되고 당신의 말씀이 우리안에 있게 됩니다. 우리가 믿는 그 순간, 성령님이 우리안에 들어오시고, 우리가 즉시 의인이 되며, 또한 주님을 우리의 입으로 부르게 됩니다. 믿음이 없이 입술로만 “주여 주여” 하는 것은 허망한 것입니다. 한국 교회에서 유일하게 발견할 수 있는 소위 “주여 삼창”에 대해서도 잘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많은 분들이 기도, 특히 통성기도를 하시기 전에 사회자의 인도에 따라 “주여! 주여! 주여!” 이렇게 세번 외치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는데, 이때의 주여 삼창에 과연 믿음이 담겨 있는 것인지, 아니면 통성기도에서 자신의 기도에 집중하기 위해, 또는 의례적으로 분위기를 잡기 위해 넣는 일종의 구호인지 모를 일입니다.
마태 복음 7:21절에서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라는 하반절의 말씀을 인용하여 율법과 도덕성을 강조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예수님은 말씀을 듣는 이들에게 어떤 행위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것은 아버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하는 사람이어야만 구원을 받고 천국에 들어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아버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613가지의 율법을 모두 잘지키는 것입니까? 악의 본성을 가진 인간의 능력으로는 이미 불가능하다는 것을 잘 아시는 하나님이 행위를 요구하시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아버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독생자이신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는 것을 원하실 뿐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입니다. 여기에서 행한다는 단어의 의미는 어떤 동작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해 들은 사람이 “예수님을 믿고 주님으로 모시기로 결정”하는 능동의 의미입니다. 복음을 전하고, 듣고, 믿고,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바로 “행하는 자”의 행위이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이제 정리하고자 합니다.
저희 자매와 목사님께 감사드립니다. 부족한 저에게 모범을 보여 주시고, 늘 말씀안에서 한결같이 자리를 지켜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지금 이자리에 함께 하신 모든 형제님과 자매님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지난 11년간 새생명교회에서 성장하면서, 여러 성도님들의 이해와 사랑이 저에게 큰 힘이 되어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을 믿습니다. 무엇보다 감사드리는 것은, 우리 성도님들 한분 한분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는 마음을 허락하여 주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말씀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더 잘알고 영적으로 꾸준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허락하여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함께 기도 드리겠습니다.
주님, 자격없는 저희를 당신의 백성으로 택하여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이 세상은 하나님의 말씀을 진리로 인정하지 않고, 인간이 만들어낸 가치과 관점으로 하나님의 지혜로우심을 재단하려 합니다. 그러나 당신께서는 자비하심으로 오래 참으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보시고 당신의 백성에게 영생과 구원을 허락하셨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은혜를 풍성하게 더하여 주셨습니다.
주님, 우리가 이 세상의 세태에 휩쓸리지 않고, 오직 다가올 하늘의 영광만 보게 하여 주십시오. 당신의 은혜가 가득한 성경을 더욱 사랑하게 해 주시고, 말씀안에게 더욱 거룩하여 지고 성장하는 새생명 교회가 되게 하여 주십시오.
이 모든 기도,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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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한국어설교
    Korean Sermon
  2. 영어설교
    English Sermon
  3. 목사님과의 대화
    Dialogue with Pastor
slogan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고린도전서 15장 58절)

"Therefore, my dear brothers,
stand firm.
Let nothing move you.
Always give yourselves fully
to the work of the Lord,
because you know that
your labor in the Lord is
not in vain."
(I Corinthians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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