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하심을 받은 자들

벧전 1:1-2



1.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
2.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이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오늘 함께 읽은 성경 말씀은 베드로전서 1장 1절과 2절의 말씀입니다. 별로 길지 않은 성경 말씀입니다. 단 2절입니다. 주보를 준비하기 위해서, 처음에는 1절부터 3절까지 할 계획이라고 말씀드렸다가, 이것도 너무 길어서 2절로 줄였습니다. 우리 형제님 자매님들께 미리 너무 짧아서 ‘죄송합니다’라고 말씀드립니다. (얼마 전에 귀국하신 나윤미 자매님께 저도 배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참으로 다행스러운 것은, 어느 정도 진도를 매주 마다 빼셔야 되는 목사님과는 달리, 그것도1년 12달 한 주도 빠뜨리지 않고, 우리를 가르치셔야 하는 목사님과는 달리, 저는 그런 부담이 없다는 사실 입니다. 때문에, 한편으로는 목사님께 죄송스럽기도 하지만, 저는 그냥 달랑 2절의 말씀만 함께 나누기로 결정하였습니다.
목사님의 강해 설교에 익숙하신 우리 성도님들께서는 혹시 마음 속으로 오늘은 10분이면 끝나겠지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저도 최대한 빨리, 함께 나눌 말씀만 드리려고 합니다만, 솔직히 10분보다는 더 걸릴 것 같습니다.
우리가 함께 나눌 베드로전서 1장 처음 2절의 성경말씀을 공부하고 묵상하면서 한가지 느낀 점은, 우리가 얼마나 편안하게 앉아서 주님의 말씀을 받아 먹고 있나 하는 점을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마치 갓난아이와 어미의 관계인 것 같습니다. 우리는 영적으로 갓난아기와 같아서, 그냥 배고프면 울고, 불편하면 불평하고, 추우면 춥다고, 더우면 덥다고 말하면 됩니다. 그러나 아이를 먹이는 어미의 심정은 이유식 하나 고를 때에도 성분을 꼼꼼히 살펴보고, 영양소는 균형이 잡혀 있는지, 필요한 성분은 모두 골고루 들어 있는지, 식약청 FDA의 인증은 받은 것인지, 다른 부모들은 어떤 이유식을 선택하는지, 여러 모로 꼼꼼히 살펴보고 아기에게 가장 좋은 이유식을 고른다는 사실 입니다.
목사님이 설교를 준비 하실 때에도 마찬가지 마음이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성도님들이 영적으로 성장하고, 구원의 확신 안에서 주님과 교제하고, 평안과 기쁨안에서 하루 하루를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의 영적 양식인 말씀을 조금이라도 더 잘 가르치고 예수님의 복음을 조금이라도 더 쉽게 그러나 정확하고 담대하게 선포하기 위해서, 많은 노력과 시간과 수고를 마다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입니다.
목사님이 우리 성도들 가운데에서 영적으로 힘이 되어 주시고, 주님의 백성들이 주님의 목소리에 기쁘게 화답할 수 있도록 격려하여 주시고 이끌어 주시는 것은, 우리 주님이 우리 교회를 위해서 허락해 주신 크신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이곳에 모인 당신의 백성들을 위해 우리 목사님을 우리 교회 공동체의 영적 지도자로 세워주시고, 동시에 담대함과 겸손함을 함께 허락하여 주셨습니다. 이 모든 것이 우리 아버지 하나님께서 우리 형제 자매님들을 사랑하시고 끝까지 구원해 주시기 위해서임을 알고, 주님께 찬양과 찬송을 드립니다.
사랑하는 형제님 자매님, 수많은 사람들이 스스로를 사도라 부르고 선지자라 부르고 주님의 종이라고 말하고, 심지어 어떤 이들은 예수님이 자신에게 특별한 계시를 자주 주시고 필요하면 예수님이나 아버지 하나님과도 마치 전화 한통으로 연결되는 것처럼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언급할 가치도 없는 많은 사람들은 스스로를 재림주, 재림예수, 심지어 하나님이라고도 말합니다. 어떤 통계에 따르면 한국사회에는 자칭 재림주가 300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이것이 현실입니다. 이것이 세상입니다. 세상은 예수님을 적대시 하고, 하나님의 백성을 박해하고 위협하고, 어떻게 해서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유혹하여 밖으로 끌어 내려고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격고 있는 세상과의 전쟁입니다.
참된 주님의 백성은, 그리스도의 참된 복음안에 머물러 있습니다. 예수님과 참된 교제를 가집니다. 예수님과의 참된 교제는 말씀을 통해서이고, 때문에 이 자리에서 주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전하는 영적 지도자가 올바로 서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주님께 진심으로 감사의 기도를 드립니다. 우리 성도와 예수님의 교회를 위해서, 늘 주님의 말씀으로 복음을 가르치시는 목사님을 허락해 주신 것을 우리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오직 우리주 예수님의 사랑으로 이 교회가 당신 안에 굳게 설 수 있음을 고백하고, 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안에서 이 악하고 험난한 세상을 향해 우리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담대하게 세상에 선포하여야 할 것입니다.
사도 베드로가 당시 로마 주변과 소아시아 지역에 흩어진 초대 교회 성도들을 위해서 첫번째 편지를 썼던 그 당시도,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주님의 백성인 성도들은 세상으로 부터 박해를 받고, 죽임을 당하고, 자신의 고향에서 쫓겨 나고, 옥에 갖히고, 사자 우리에 던져지고, 슬퍼하고, 절망하고, 예수님은 도대체 언제 오시는 것이냐고 울부짖고 있었습니다.
역사가들은 다음과 같이 서술합니다. 당시 로마 제국의 황제는 폭군으로 유명한 네로 입니다. 주님이 태어나신 후 64년 7월 19일, 역사가 타키투스 (Tacitus)는 그의 기록에서 로마의 대화재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서술하였습니다.  6일간 대화재가 꺼질 줄 몰랐으며, 매우 빠르게 번졌고, 불길이 잡힌 지역에서는 이상하게도 다시 불길이 살아나는 현상이 반복되었다. 로마의 14개 구역중에서 4개 구역만 불길을 피할 수 있었으며, 3개 구역은 전소, 다른 7개 구역은 매우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고 전합니다. 
어떤 역사가는 대화재가 일어 났을때 네로 황제는 무대 의상을 입고 불구경을 하면서 악기를 연주하고 노래를 불렀다고도 하고, 또 다른 역사가는 네로 황제가 자신의 제물을 풀어 이재민을 구원하고 쉴곳을 제공했다고 하기도 합니다. 네로가 불구경을 했다는 주장과 그렇지 않다는 주장 중에 어떤 기록이 더 정확한지는 분명치 않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화재로 당시 로마를 상징하던 대표적인 건물들이 모두 파괴되었고 수많은 개인 소유의 저택들이 불에 타버렸고, 또 수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는 것입니다.
재산뿐만 아닙니다. 로마의 수많은 이교도 남신과 여신을을 숭배하는 신전들도 모두 불에 타 없어져 버렸습니다. 당시 세계의 중심임을 자부하던 로마 시민들은 자신들의 종교와 숭배의 대상들이 대화재로 파괴되는 것을 지켜볼 수 밖에 없었고, 이는 시민들의 불만으로 이어졌습니다.
시민의 불만에 기름을 부은 사건이 또 일어 났는데, 화마로 파괴된 건물들이 있던 자리에, 네로 황제가 자신을 위해300에이커에 달하는 ‘황금 궁전 (Golden Palace)’을 지었고, 또 이를 위해 로마 제국 전역에서 세금을 추징했다는 것입니다.
이제 로마 시민의 민심은 흉흉해 졌습니다. 혹시 황제가 자신의 궁전을 짖기 위해서 이미 있던 건물들을 파괴할 목적으로 고의적이고 계획적인 방화를 한 것이 아니냐는 의심이 시민들 사이에서 만연하였습니다.  이런 불만 높은 민심은 일부 지역의 반란의 조짐으로 이어졌고, 심지어 근위대 일부 병사들은 실제로 반란을 시도하기도 하였습니다. 자신의 정치적 생명이 위험하다는 것을 깨달은 네로 황제는 민심의 방향을 돌릴 희생양을 찾아야만 했습니다.
당시 로마인들로 부터 그저 작은 이교도 종교집단으로 치부되던 초대교회 크리스챤들은 먹기 좋은 떡과 같은 희생양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전형적인 로마인들의 시각에서 초대 교회의 크리스챤을 바라보면, 참으로 내세울 것도 없고 힘도 없어 보이고,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작은 이단 종교 모임같기만 합니다. 그런데, 크리스챤이라는 사람들의 겉모습과 소문을 보면, 무척이나 파격적이고 도전적이고 용납하기 어렵습니다.
우선 로마 황제를 신으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신성제국인 당시 로마제국에서 황제는 곧 신의 대리인 인데, 크리스챤들은 이를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또, 당시 사회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남녀간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여성 신도가 교회 안에서 존경받고 준중받았다는 것을 우리는 성경 말씀을 통해서 알고 있습니다.
남녀간의 차이 뿐만 아니라, 사회 계급과 신분도 무시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귀족이든 자유인이든, 그리고 노예든 구분치 않고, 서로를 형제라고 부르고 자매라고 부릅니다. 심지어 형제간의 인사로 포옹을 하고 뺨에 입을 맞추기도 합니다. 일부 로마 귀족들은 자신의 아내가 크리스챤의 모임에 나아가서 외간 남자들과 성적으로 문란한 행위를 하는 것은 아닌지, 그리고 동성애가 판을 치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기도 하였습니다.
또 일주일에 한번씩 모이면 밤을 세면서 자기들 끼리 누구의 피를 나누어 마시고 누구의 살을 함께 뜯어 먹는다라는 식의 소문도 있습니다. 여행객이나 어린아이를 잡아서 제물로 바치고 먹는다는 흉흉한 소문도 들립니다.
또 크리스챤들은 항상 말하길, 예수라는 사람이 다시 곧 오실 것이고, 그날에는 온 세상이 불로 심판받을 것이라고 공공연 하게 주장하고 다닙니다.
이상의 모든 것들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네로 황제에게 중요치 않았습니다. 그저 민심의 방향만 틀어주면 될 뿐이었습니다. 네로 황제는 로마의 사회 제도와 정치 제도를 인정하지 못하는 크리스챤들이 사회 혼란을 일으키기 위해 방화를 저질렀다고 한마디만 하면 될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초대교회를 향한 로마제국의 박해가 시작됩니다. 로마에 거주하던 크리스챤 뿐만아니라, 로마제국 전역에 있는 모든 크리스챤들에게 범죄자 반역자라는 빨간 딱지가 도매급으로 붙여진 것입니다.
역사가 타키투스 (Tacitus)는 그의 기록에서 어떻게 크리스챤들이 박해를 받았는지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혔고, 산채로 불에 던져졌으며, 짐승 가죽을 뒤집어 씌운뒤에 사냥개에게 산 채로 던져 지기도 하였습니다. 이런 일들은 비단 로마 뿐만 아니라, 로마 제국 전역에서 비일 비재하게 일어났습니다. 마치 모든 사람들이 크리스챤을 향한 살인 면허를 가진 상황이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박해 받으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처럼, 초대 교회의 성도들도 거부당하고 박해 받고 핍박 박고, 경우에 따라서는 모든 소유를 빼앗기고 심지어 목숨까지 빼앗기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이제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한 목숨 구하고자 아무도 자신이 크리스챤이라는 것을 모르는 낯선 곳으로 피신하는 것 뿐입니다.
성도들의 고난과 위험을 지켜보는 사도 베드로의 심정은 어떠 했을까요? 단지 예수 그리스도를 메시아로 믿는다는 이유만으로 핍박을 당하는 형제 자매들의 소식이 전해 질 때마다, 사도 베드로는 크게 눈물 흘렸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어느날, 아마도 로마 대화재가 일어난 후 얼마 지나지 않은 때에, 사도 베드로는 성령님의 감동을 통해서, 각지로 피신한 사랑하는 형제 자매들에게 첫번째 편지를 쓰게 됩니다. 바로 본도와 갈라디아와 갑바도기아와 아시아와 비두니아로 흩어질 수 밖에 없었던 성도들, 자신의 고향과 집을 떠나 낯선 땅 낯선 문화에 내던져 질 수 밖에 없었던 성도들, 세상으로부터 거부당하고 배척당할 수 밖에 없었던 성도들에게 사도 베드로는 첫번째 편지를 쓰게 됩니다.
바로 위로와 격려의 편지 입니다. 소망과 사랑의 편지 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안에서 함께 끝까지 굳게 서 있자는 각오의 편지 입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형제들을 나그네라고 부릅니다. 이 세상에게 있어서, 믿음의 성도는 나그네요 이방인이라는 사실을 사도 베드로와, 또 이 편지를 함께 읽었던 초대 교회 성도들은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동시에, 이 세상에서 나그네이기 때문에 자신들의 본향은 이 곳이 아니라 예수님이 예비하시고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나라라는 사실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바로 믿음의 성도는 하나님의 백성이고, 하나님의 백성에게 있어서 진정한 본향은 바로 하나님의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2절에서 사도 바울은 나그네로 낯선 땅에 피신한 형제 자매들에게 담대하게 참된 진실을 선포합니다.
걱정하지 마라, 왜냐 하면, 여러분은 바로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이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받은 자들”이나까 절대로 걱정하지 마라. 이렇게 선포합니다. 바로 1장 2절의 말씀입니다.
비록 세상이 여러분을 미워하고 박해할 지언정, 그런 것에 주눅들지 마라. 왜냐하면, 여러분은 아버지 하나님이 이미 시간이 시작되기 전부터 당신의 백성으로 불러주시기로 선택한 주님의 자녀들, 주님의 음성을 알아 듣는 주님의 양들, 주님의 대제사장, 선택받은 족속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합니다. 이게 진실이고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이게 성경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자신의 고향을 떠나 각지로 흩어진 성도들의 아픔과 고통을 분명히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은 어차피 믿음의 성도들에게는 나그네가 잠시 머물다 가는 타향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너무 절망하지 말라고 위로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성도에게는 이미 구원이 확신과 영원한 생명이 주어졌기 때문에 이미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있다는 것을 상기시키는 것 입니다. 바로 하나님이 선택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이미 당신의 백성을 시간이 시작되기 전부터 선택해 주셨다라는 성경의 말씀, 신학자들은 ‘구원예정설’이라고 말합니다. 즉, 우리가 구원 받는 것은 하나님이 이미 알고 정해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듣고 믿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하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요, 우리가 새생명을 받고 영원한 구원의 확신을 가지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입니다.
쉽게 받아들이시는 형제 자매님들을 뵐 때마다, 참으로 놀랍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왜냐하면, 제 스스로가 인간의 자유의지를 너무 소중히 생각했던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최소한, 복음을 전해 들었을때, 이 복음을 영생의 진리로 받아 들일 것이냐 말것이냐는 온전히 나 스스로의 결정이 되어야 하지 않느냐는 생각을 하곤 했습니다. 만약 하나님이 태초부터 이미 넌 천국행, 넌 지옥행 이렇게 정해 놓으신 것이 진짜 사실이라면, 이건 좀 불공정한 것 아니냐, 적어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기회는 한 번이라도 줘야 하는 것 아닙니까? 라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렇게 불공평한 구원 사업을 역사하실 수 있단 말입니까? 라고 생각 했었습니다.
많은 성도님들 가운데에서, 그리고 믿지 않는 사람들 가운데에서, 이 문제는 고민과 비판의 문제입니다.
1952년에 세상을 떠난 영국의 신학자 Arthur Pink는 그의 유명한 설교를 다음과 같이 시작하였습니다.
“나는 오늘밤 성경이 가르쳐 주는 교리 중에서 가장 미움의 대상이 되는 진실을 말하고자 합니다. 가장 미움의 대상이 되는 진실, 바로 주님께서는 당신의 온전하신 주권으로 당신의 백성을 선택하시고 불러주신다는 것입니다”. Pink 목사님의 말이 맞습니다. 구원예정설은 많은 사람들이 불편해 하고, 더 나아가 미워하는 교리입니다.
Pink목사님은 그의 다른 서신에서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주권을 행사하시고 당신의 백성을 선택하신다는 진실은, 믿는다고 고백하는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조차도 가장 꺼림직하게 취급당하고 모욕적으로 공격받는 교리입니다. (그러나) 저는 오늘 이 진실을 아주 평범한 말로 선언하고자 합니다.  인간의 구원은 인간의 의지로 인해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의지로 주어지는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 아니라면 (즉, 하나님의 의지가 아니라 인간의 의지로 구원을 획득할 수 있다는 주장이 사실이라면), 우리중에는 구원 받거나 구원을 얻을 수 있는 사람이 한 명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이 (아담으로 인해) 타락하는 그 순간, 이미 선해지고자 하는 의지를 잃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으로 부터 선택받은 백성인지 아닌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하나님에게 선택받고 영생을 얻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인데, 인간이 타락하는 그 순간, 이미 선함을 추구하고자 하는 의지는 사라지고 없기 때문에 아무도 구원에는 관심조차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하나님만이 온전한 주권자이시다 라는 가르침을 거부하고 공격하는 소리만이 요란할 것입니다. 스스로 도덕적이고 윤리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절대로 인정하지 않을 것이고, 또한 인간의 의지가 얼마나 나약하고 불완전한지 절대로 동의하지 않을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을 직접 선택하신다는 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가장 큰 목소리로 반대하는 부류의 사람들은 타락한 인간의 자유의지가 절대 진리인양, 심지어 하나님의 절대 주권보다 우위인양 착각하는 사람들입니다.”
분명한 것은, 우리가 구원받고 영생을 얻는데에 있어서, 우리가 한 것은 하나도 없다는 사실 입니다. 만약 우리가 스스로의 자유의지로 의인이 되고 구원 받을 수 있다면, 이는 곧 우리의 노력과 의지로 구원을 받는다는 말과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조금이라도 나 자신의 구원에 내가 기여를 해야만 내 속이 편해지겠다라고 말한 것은, 결국 스스로의 자부심과 자만심일 가능성이 큽니다. 내가 뭔가 옳바른 결정을 내린 것에 대해서 하나님이 나에게 구원이라는 보상을 해주셔야 한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 자체가 얼마나 거만한 생각입니까?
불공정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여기서의 공정함과 불공정함의 기준은 누구의 기준입니까? 타락한 인간이 생각하는 공정함과 불공정함입니까? 창조주시요 주권자이신 하나님 아버지의 공정함과 불공정함입니까? 혹시 타락한 육체를 가지고 하루 하루를 유혹에 빠져 살면서도 나는 아직 공정함을 이야기할 자격이 있다라고 착각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시편 기자는 “의와 공평이 그의 보좌의 기초로다”라고 시편 50:21절에서 선언합니다. 의와 공평이 우리 주님의 보좌를 이루는 기초입니다. 과연 타락한 인간이 자신의 자유의지라는 잦대를 가지고 하나님의 공평함을 판단할 수 있겠습니까?
• 이사야서 55:8.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9.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이사야서 55:8-9의 말씀입니다. 인간의 작은 지혜로 하나님의 생각을 감히 추측하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결정이 우리의 상식과 다르다고 해서 우리가 하나님이 잘못 하신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고 선지자 이사야는 기록합니다. 피조물인 우리가 창조주께서 하시는 역사에 감놔라 배놔라 할 입장이 아닌 것입니다.
• 로마서 11:33.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34.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냐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냐. 35.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냐.  36.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
로마서 11:33-36절의 사도 바울의 찬송입니다. 누가 하나님에게 감히 모사가 될 수 있다는 말입니까? 하나님은 모든 역사를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하나님에게 공평하다 공평하지 못하다 비판을 한다면, 이는 곧 넘지 말아야 하는 선을 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의 주제를 잊어버리는 어리석음일 뿐입니다.
이렇게도 한번 생각해 봅시다. 우리는 성경말 씀을 통해서 타락한 인간은 이미 선함을 잃어버렸고 오직 악한 본성만이 남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미 모든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한명도 없는 것입니다.
그 와중에, 하나님께서 당신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몇몇 사람을 선택하시고 예수님에게 주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통해서 구원을 허락해 주십니다. 이것이 과연 불공정한 것입니까? 오히려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 그리고 사랑 아닙니까? 우리가 아무 것도 하지 않고도 선물로 받은 구원은 공정 불공정의 문제가 아닙니다.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 그것도 넘치도록 부어주시는 은혜입니다.  우리는 절대 주권자이신 하나님이 선택하신 하나님의 백성인 것입니다.
때문에 누군가가 당신의 종교는 무엇입니까 라고 묻는다면 ‘크리스챤입니다.’라는 대답대신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사람’입니다 라고 대답해도 괜찮은 것입니다. 실제로 이스라엘 민족은 자신들을 그렇게 불렀고, 지금도 그렇게 부르고 있습니다.
• 신명기 7:6.  너는 여호와 네 하나님의 성민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너를 자기 기업의 백성으로 택하셨나니
신명기 7장의 말씀입니다. 14장에도 같은 말씀이 나옵니다.
• 신명기 14:2.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성민이라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너를 택하여 자기 기업의 백성으로 삼으셨느니라
누가 선택하셨습니까? 바로 하나님 여호와께서 지상의 수 많은 만민들 중에서 이스라엘을 택하셨습니다. 자신의 백성으로 삼기 위해서 택하신 것입니다.
시편에도 같은 말씀이 나옵니다.
• 시편 135:4.  여호와께서 자기를 위하여 야곱 곧 이스라엘을 자기의 특별한 소유로 택하셨음이로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당신의 백성으로 택하신 것처럼, 당신의 교회로 택하여 주신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 마태복음 24:21.  이는 그 때에 큰 환난이 있겠음이라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22. 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하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나 그러나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시리라 23. 그 때에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혹은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24.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리라
마태복음 24장은 말세의 혼탁한 세상과 거짓 선지자들에 대해 경고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22절과 24절에 나오는 ‘택하신 자들’ 입니다. 이는 곧 주님의 교회를 뜻합니다. 같은 표현이 31절에도 나옵니다.
• 마태복음 24:31.  그가 큰 나팔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의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마태복음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는 날, 주님께서는 당신이 택하신 백성을 불러 모이실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하나님의 택하심은 누가 복음서에도 나옵니다.
• 누가복음 18:7.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그들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사도 바울이 로마 교회에 보낸 편지는 어떻습니까? 사도 바울은 구원의 확신에 대해서 말하면서, 세상의 어떤 권세도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을 당신의 구원에서 떼어 놓을 수 없고, 특히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금도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서 간구 하고 계신다고 선언합니다.
• 로마서 8:33.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34.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골로새교회에 보낸 편지에서도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성도로서 어떠한 생활 원리를 가져야 하는지에 대해 설명합니다.
• 골로새서 3:12.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이 택하사 거룩하고 사랑 받는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14.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15.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디모데에게 보낸 두번째 편지에서도, 사도 바울은 자신의 이방인 사역에 대해서 설명하면서, 자신이 모든 고난을 참으며 이방인들을 향해 복음을 전하는 것은 그들중에 하나님이 택하신 백성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 디모데후서 2:10.  그러므로 내가 택함 받은 자들을 위하여 모든 것을 참음은 그들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원을 영원한 영광과 함께 받게 하려 함이라
베드로는 그의 첫번째 편지를 택하심을 받은 자들에게 쓴다고 서두에 밝힙니다. 오늘 읽은 1장 2절의 말씀입니다. 이어지는 2장에서는 택하심을 받은 자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자들인지를 설명합니다.
• 베드로전서 2:9.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10.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주님의 택함을 받은 우리는 바로 주님의 소유, 주님의 백성입니다.
사도행전 15장에서는 예루살렘 공회에서 어떻게 사도들이 이방인 성도들과 더불어 어떻게 하나님의 교회를 세워갈 것인지 결정하는 중요한 사건이 증언됩니다. 먼저 사도 베드로가 말을 합니다.
• 사도행전 15:7. 많은 변론이 있은 후에 베드로가 일어나 말하되 형제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이 이방인들로 내 입에서 복음의 말씀을 들어 믿게 하시려고 오래 전부터 너희 가운데서 나를 택하시고   8. 또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와 같이 그들에게도 성령을 주어 증언하시고  9. 믿음으로 그들의 마음을 깨끗이 하사 그들이나 우리나 차별하지 아니하셨느니라
이에 사도 야고보가 선지자 아모스의 예언서 9:11-12절을 인용하여 화답합니다.
• 사도행전 15:13. 말을 마치매 야고보가 대답하여 이르되 형제들아 내 말을 들으라 14. 하나님이 처음으로 이방인 중에서 자기 이름을 위할 백성을 취하시려고 그들을 돌보신 것을 시므온이 말하였으니 15. 선지자들의 말씀이 이와 일치하도다 기록된 바 16. 이 후에 내가 돌아와서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다시 지으며 또 그 허물어진 것을 다시 지어 일으키리니 17. 이는 그 남은 사람들과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모든 이방인들로 주를 찾게 하려 함이라 하셨으니 18. 즉 예로부터 이것을 알게 하시는 주의 말씀이라 함과 같으니라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포도원 일꾼들의 비유는 어떠합니까? 마태복음 20장 1-16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성경에서 한번 찾아 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마태복음 20:1-16입니다.
모두가 잘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줄거리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천국을 포도원에 비유하여 하나님의 주권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아침 일찍부터 일한 일꾼이나, 저녁 늦게 포도원에 일하러 온 일꾼이나, 모두 하루치 품삯 한 데나리온씩 받습니다. 아침부터 일한 일꾼이 불공평하다고 불평합니다. 이에 포도원 주인이 다음과 같이 대답합니다.
• 마태복음 20:13. 주인이 그 중의 한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친구여 내가 네게 잘못한 것이 없노라 네가 나와 한 데나리온의 약속을 하지 아니하였느냐  14.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나중 온 이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니라  15.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타락한 인간의 기준으로 공평하지 못하다고 생각되는 것일지라도, 하나님의 기준에는 전혀 문제가 될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구원받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으로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인 것이지, 거저 구원 받은 우리가 불평하고 시비를 것 근거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복음의 원리입니다. 마태복음 20장 15절에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곰곰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닏.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
우리가 예수님에게 왜 누구는 선택하고 누구는 선택하지 않으시냐고 불평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이미 죄인이었고 감히 구원을 상상조차 할수 없는 타락한 존재였습니다. 이런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당신의 백성으로 택하여 주시고, 또 당신의 피로 우리의 죗값을 치르신 분이 바로 우리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 이십니다.
예수님께서 또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15:16절의 말씀입니다.
• 요한복음 15:16.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
누가 누구를 선택하였습니까? 우리 인간이 우리의 자유의지로 예수님을 구세주로 모신 것입니까?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바로 내가 너히를 택하여 세웠다고 말씀하십니다. 누가 갑이고 을인지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또 말씀하십니다. 당신이 잠시후면 사랑하는 제자들을 떠나 아버지 하나님께 돌아갈 것이라고 말씀하신후, 뒤에 홀로 남을 제자들을 생각하시어 아버지 하나님께 간구의 기도를 드립니다.
• 요한복음 17:9.  내가 그들을 위하여 비옵나니 내가 비옵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이니이다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로소이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제자들을 어떻게 부르셨습니까? 하나님 아버지의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이 택하시고 예수님에게 주신 자들이 바로 택하심을 받은 자들인 것입니다. 우리가 바로 이 택하심을 받는 자들인 것입니다.
사도행전 13장에도 중요한 사건이 나옵니다. 사도 바울과 사도 바나바가 안디옥에서 전도할 때에 첫번째 안식일날 수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드리고 예수님을 구세주로 시인하였습니다. 그 다음 안식일에도 회당에서 예수님의 복음을 담대히 전하고자 하였는데, 이때에는 거의 온 시민이 다 모여서 예수님에 대해 듣고자 하였습니다. 사도행전을 쓴 누가는 이때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사도행전 13:48의 말씀을 함께 찾아 보겠습니다.
• 사도행전 13:48.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복음을 들었다고 해서 모든 이방인들이 믿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미리 택하시고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들만 모두 다 믿었다고 사도행전의 말씀은 분명히 말합니다.
사도 바울도 하나님의 택하심을 정확하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로마서 9장의 말씀입니다.
• 로마서 9:13. 기록된 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 14.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15.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셨으니 16.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하나님이 태중에서 부터 야곱을 편애하실 이유가 있습니까? 인간적인 관점으로 하나님께서 택하시는 기준이 무엇인지 참으로 이해하기 곤란해 보입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분명히 말합니다. 우리가 무슨 말을 하겠냐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뜻대로 하시겠다는데, 우리가 무슨 자격으로 하나님께 불평을 하겠냐고 말합니다. 그리고 15절에서 말합니다. 하나님의 택하심은 당신의 긍휼하심, 즉 하나님의 자비하심 때문이라는 것을 말합니다. 바로 복음의 원리,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가 택하심을 받고 구원을 얻은 것은, 우리가 원해서도 아니고, 우리가 달음박질하듯이 노력해서도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오직 하나님의 긍휼하심 때문에 우리가 택함을 받고 구원을 받는다고 사도 바울은 가르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주권에 대해서 말하니다.
• 로마서 9:20.  이 사람아 네가 누구이기에 감히 하나님께 반문하느냐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냐  21.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들 권한이 없느냐 
사랑하는 형제님 자매님… 누구는 택하심을 받고 누구는 택하심을 못받고. 인간의 관점에서는 불공평해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해 주시는 것 자체가 이미 하나님의 은혜임을 잊어서는 안되겠습니다. 우리가 허락 받은 구원에는 우리가 흘린 땀과 노력이 한줌도 들어가 있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긍휼하심, 하나님의 은혜만 있을 뿐입니다. 구원받은 성도들의 마땅한 자세는 우리를 구원해 주시기 위해서 우리를 택하신 아버지 하나님과, 또 우리 죄를 대신해 피흘려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 감사와 찬미를 드리는 것 뿐입니다.
이외에도 함께 나누고 싶은 성경 말씀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고린도전서, 에베소서, 데살로니가 전후서, 디모데 전후서, 그리고 요한 계시록 까지, 수많은 성경말씀은 하나님의 주권과 하남의 택하심을 분명히 말해주고 있습니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함께 더 공부해 보기를 원합니다.
이제 마무리를 하고자 합니다.
앞에서 제가 Arthur Pink 목사님의 설교와 서신의 일부를 인용했는데, 다시 그분의 설교를 인용하겠습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들을 미리 택하셨다는 것을 진리로 믿는 사람은, 다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말씀이 그렇게 가르치고 있기 때문에 믿는 것입니다. 택하심의 진리는 인간이 만들어 낸 교리가 아닙니다. 죄인은 영원히 정죄받는다는 교리와 더불어, 택하심의 진리는 타락한 인간의 마음으로는 인정하기 어려운 가르침이고, 또한 거듭나지 못한 인간의 본성에 비추어 분명 거부감이 드는 가르침 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삼위일체를 믿고 구세주의 동정녀 탄생을 믿는 것처럼, 택하심의 가르침 또한 따지지 말고 그저 믿는 것이 유익합니다.”
사랑하는 형제님 자매님,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선택해 주신 이유는 크게 두가지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첫번째 이유는, 누가 갑이고 을인지를 분명히 하신 것입니다. 누가 창조주이고 누가 피조물인지 분명히 하신 것입니다. 누가 토기장이이고 누가 토기그릇인지 분명히 하신 것입니다. 누가 포도원 주인이고 누가 포도원 일꾼인지 분명히 하신 것입니다. 오직 홀로 영광 받으실 주님만이 모든 권세를 가지고 계시고, 오직 주님만이 절대 주권을 가지고 계시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는 것이 바로 구원예정설, 택하심의 진리 입니다.
두번째 이유는, 우리가 구원 받은 것은 우리의 노력의 결과도 아니고, 우리의 선택의 결과도 아니고, 우리의 자유의지의 결과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자존심의 결과는 더더욱 아닙니다. 우리가 구원 받은 것은 오로지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긍휼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시기 때문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은혜때문에 우리가 구원받았다는 사실, 즉 복음의 원리입니다. 이 진실은 우리를 혼란스럽게 만들기 위해서 하나님이 주신 것이 아닙니다. 다만, 주님께서는 우리가 당신의 사랑과 은혜에 감사하고 찬양하기를 원하실 뿐입니다. 홀로 찬미받으실 우리 주님께 영광을 올립니다.
주님, 우리를 당신의 백성으로 택하여 세워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우리는 택함을 받을 자격이 하나도 없지만, 오직 주님의 긍휼하심에 힘입어 당신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주님, 우리로 하여금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오직 주님께 경배와 찬양을 드리게 하여 주십시오. 우리가 받은 복음의 원리는 오직 믿음으로 구워받고, 오직 당신의 은혜로 구원받고, 오직 당신의 절대 능력 절대 주권으로 구원받는다는 것임을 잊지 않게 하여 주십시오. 여기에 우리의 행위나, 의지나, 노력이나, 자존심이나, 도덕심이나, 인간 기준의 공평함 등이 우리를 혼란시키지 않도록 하여 주십시오. 우리가 인간의 논리와 인간의 상식에 앞서서, 주님의 말씀을 듣도록 하여 주실 것을 믿고, 모든 것을 주님께 의지하고 찬양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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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orean Sermon
  2. 영어설교
    English Sermon
  3. 목사님과의 대화
    Dialogue with Pastor
slogan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고린도전서 15장 58절)

"Therefore, my dear brothers,
stand firm.
Let nothing move you.
Always give yourselves fully
to the work of the Lord,
because you know that
your labor in the Lord is
not in vain."
(I Corinthians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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