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므나 비유 (눅 19:11-27)


서론: 지난 주일에는 눅 19:1-10을 본문으로해서 ‘삭개오의 변화’라는 제목의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는 세리장이었고 부자였는데, 예수님을 만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지나가시는 길에 서 있는 뽕나무 위로 올라가서 예수님을 뵈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의 집에 유하시려 하자 너무 기뻐했습니다.

예수님을 기쁨으로 영접한 그는 재산의 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겠다고 했습니다.

혹시 토색한 것이 있으면 4배나 갚겠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마음에 영접하여 영원한 생명을 얻은 사람은 변합니다.

사람에 따라 그 정도와 속도는 다르지만 분명히 변합니다.

예수님께 대한 인식과, 가치관과, 세계관과, 생활 습관이 변합니다.

예전에 내 중심적인 사고방식이 주님과 다른 사람을 위하는 것으로 바뀝니다.

내가 예수님을 마음에 영접하고 난 뒤 어떤 것이 변했는가 점검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이 지난 주일에 저희들이 배운 교훈입니다.

오늘의 본문은 눅 19:11-27입니다.

열 므나에 대한 비유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늘의 말씀을 통해 나는 어떤 종인가, 무엇을 해야 주인에게 칭찬을 들을 수 있는가에 대해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1) 맡겨진 므나 (11-14): 11. 사람들이 삭개오의 변화를 보며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는 중에 예수님께서 이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이 비유의 목적은 하나님의 나라가 당장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려 주기 위함입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가까이 가시니 사람들이, “이제 곧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고난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고 하늘나라의 영광에 대해서 관심이 많았습니다.

12. 그래서 한 귀인에 대해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귀인이 왕위를 받으려 먼 나라로 갑니다.

13. 그가 종 10명을 불러 각 사람에게 한 므나씩 주며 장사를 하라고 했습니다.

마 25:14 이하에 보면 각 사람의 재능에 따라 5 달란트, 2달란트, 1달란트를 주었다고 했습니다.

한 므나는 그리스의 기초화폐인 드라크마의 100배인 은전이며, 한 달란트는 6,000드라크마 정도입니다.

한 드라크마는 노동자의 하루 임금입니다.

예수님께서 두 장소에서 비슷한 비유를 말씀하신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어떤 때에는 일률적으로 또 어떤 때는 재능에 따라 각 사람에게 임무를 주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는 장사를 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마치 우리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일률적으로 명령하신 것과 같습니다.

사람에 따라 전하는 형태는 다르고 빈도수는 다르더라도 복음을 전하는 것은 우리에게 맡겨진 주님의 명령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피흘려 돌아 가셔서 우리의 모든 죄를 다 사해 주시고 우리에게 영생을 주셨습니다.

누구든지 믿기만 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주신 것입니다.

이 복음이 곧 하나님의 능력인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체험을 했든지, 어떤 능력을 받았든지 그 목적은 곧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 체험과 능력은 별로 가치가 없습니다.

14. 그런데 그 백성 중 얼마는 그 귀인이 왕이 되는 것을 원치 않아 사신을 보냈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구세주가 되는 것을 부정하는 사람들입니다.

이 세상에는 예수님이 구세주 되심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들에게 복음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것이 우리에게 맡겨진 므나입니다.


2) 결산 (15-23): 15. 귀인이 왕위를 받고 와서 종들의 장사한 것을 알려고 합니다.

우리에게 결산할 때가 있음을 알려줍니다.

믿는 사람들에게는 지옥에 가는 정죄는 없습니다 (롬 8:1-2).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를 그 정죄에서 구속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믿은 자들에게 행위에 대한 심판은 있습니다.

우리 각 사람이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들어날 것입니다 (고후 5:10).

우리 마음의 은밀한 생각까지 선악간에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전 12:14).

16. 첫 번째 종이 나와서 한 므나로 열 므나를 남겼다고 보고합니다.

17. “잘 하였도다. 착한 종이여, 네가 지극히 작은 것이 충성하였으니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고 주인이 말했습니다.

착한 종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합니다.

마 25:21을 보시면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고 하셨습니다.

착하다는 말과 충성된다고 하는 말 (Faithful) 은 동의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선하시고 성실하신 분입니다.

성실한 하나님께서는 작은 일을 성실하게 행하는 사람을 기뻐하십니다.

성실한 사람은 주어진 일에 성실하게 봉사합니다.

성실하지 못한 사람은 일을 시작했다가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만 두고 하나님 핑게됩니다.

저는 행하는 일의 규모에 관계없이 겸손하고 진실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를 원합니다.

18. 두 번째 종이 와서 한 므나로 다섯 므나를 남겼다고 보고합니다.

19. 주인은 그에게 다섯 고을 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었습니다.

여기서는 많이 남긴 종에게 많은 권세를 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마 25:21, 23을 보시면 다섯 달란트로 다섯 달란트를 남긴 종이나 두 달란트로 두 달란트를 남긴 종을 똑 같이 칭찬했습니다.

하나님께는 얼마나 많이 남겼느냐 보다 얼마나 성실하게 순종했느냐가 더 중요한 것 같습니다.

20. 한 므나를 받은 종이 나와서 자신이 받은 한 므나를 내어 놓았습니다.

그 돈을 수건에 싸 두었다고 했습니다.

21. 그렇게 한 이유는 주인이 엄한 사람이어서 주인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 주인은 두지 않는 것을 취하고 심지 않는 것을 거두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그 종은 자기 주인을 비합리적이고 비도덕적인 사람이라고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도 비합리적이고 비도덕적인 분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담이 타락할 것을 알고도 그냥 두셨고, 모든 것을 창조하셨으니까 악도 하나님께서 창조하셨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더라도 열심히만 구하면 주실 것이라고 착각합니다.

우리의 의지로 하나님의 의지를 꺽으려고 합니다.

그런한 태도는 비논리적이며 성경의 가르침에 위배됩니다.

성경에는 엄청난 논리가 있습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 자체가 바로 논리이십니다 (요 1:1).

22. 주인은 그 종을 악한 종이라고 불렀습니다.

마 25:26을 보시면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했습니다.

악하다는 개념과 게으르다는 개념이 비슷함을 알 수 있습니다.

게으른 분들은 조심하십시요.

23. 주인이 말하기를, “네가 나를 비합리적이고 비도덕적인 사람으로 알았다면, 내 돈을 은행에 맡겨 그 이자를 내가 찾도록 하여야 했을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명령에 대해 어떠한 태도를 취하느냐 하는 것은 그 분을 어떠한 분으로 인식하고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고 합리적인 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기에 따라 행동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자기보다 못한 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의지를 자신의 의지에 굴복시키려 합니다.

우리에게는 반드시 결산의 시간이 있을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께 어떠한 말씀을 들을 것인가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3) 있는자, 없는 자 (24-27):

24. 한 므나를 가지고 있는 악한 종에게 말을 마친 후, 주인은 그 한 므나를 빼앗아 열 므나를 남긴 종에게 주리고 하셨습니다.

25. “그에게는 이미 열 므나 남긴 것이 있습니다.”라고 다른 종이 대답합니다.

26. 주인이 말하기를, “있는 자는 받겠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고 말했습니다.

주님께서 주신 명령에 순종하는 사람은 그 열매가 더 풍성해지고, 불순종하는 사람은 자신이 받은 은사도 잃어버리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 형제 자매님들은 주님으로부터 어떤 재능과 은사를 받았습니까?

그 받은 재능과 은사를 누구를 위해 쓰고 있습니까?

우리의 모든 재능을 돈 버는 데 쓰고 있지나 않습니까?

혹시 재능이 너무 작다고 불평하지나 않습니까?

작은 일에 성실하십시다. 그러면 주님께서 큰 상급을 주실 것입니다.

27. 예수님을 구세주로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믿은 우리에게는 그런 정죄함은 없습니다.

우리를 구원해 주신 주님의 복음을 생각하면, 주님을 위해 아무리 작은 일을 해도 기쁨이 될 것입니다.

내 자신이 위대한 사람이 되려고 생각지 맙시다.

주님을 위해 작고, 겸손하고, 성실한 종이 됩시다.

우리에게 주어진 지극히 작은 일에 성실히 봉사하면, 주님께서 오실 때에 우리에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착하고 성실한 종아, 네가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내가 큰 것으로 네게 주리라.”

말씀이 은혜가 되셨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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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nglish Sermon
  3. 목사님과의 대화
    Dialogue with Pastor
slogan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고린도전서 15장 58절)

"Therefore, my dear brothers,
stand firm.
Let nothing move you.
Always give yourselves fully
to the work of the Lord,
because you know that
your labor in the Lord is
not in vain."
(I Corinthians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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