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모습 너머의 눈, 해 위의 눈으로 보라.
다윗의 아들 솔로몬이 고백한 전도서는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한 번에 읽어야 한다. 조심하라. 따로 떼어 읽다가는 우울증에 빠지고 자살 충동이 일어날 수도 있다.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해 아래에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사람에게 무엇이 유익한가.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 해는 뜨고 해는 지되 그 떴던 곳으로 빨리 돌아가고 바람은 남으로 불다가 북으로 돌아가며 이리 돌며 저리 돌아 바람은 그 불던 곳으로 돌아가고 모든 강물은 다 바다로 흐르되 바다를 채우지 못하며 강물은 어느 곳으로 흐르든지 그리로 연하여 흐르느니라. 모든 만물이 피곤하다는 것을 사람이 말로 다 말할 수는 없나니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가득 차지 아니하도다 . 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할지라 해 아래에는 새 것이 없나니 무엇을 가리켜 이르기를 보라 이것이 새 것이라 할 것이 있으랴 우리가 있기 오래 전 세대들에도 이미 있었느니라”
전도서에서 유의할 단어는 “해 아래”이다. 겉으로 보는 눈, 해 아래의 눈을 가지고 보면 모든 것이 허망하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믿음으로 볼 수 있는 “해 위” 의 눈을 갖게 하셨다. 영원한 관점으로 보기 시작하면 기적의 삶을 살 수 있게 된다.
우주 전체는 믿음으로 움직인다. 특히 우리는 믿음으로 살도록 지어졌다. 우리는 일시적인 것을 통하여 보이지 않는 영원한 것을 보는 특권을 받았다. 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우리는 눈에 보이는 일시적인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을 하나님의 관점에서 분별한다.
예수님의 삶이 그러했다. 예수님은 눈에 보이는 일시적인 것을 보셨다. 그러나 손 마른 사람이 팔을 뻗었을 때, 그 팔을 운명으로 보지 않으셨다. 사람들이 가져온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도 예수님께는 부족해 보이지 않았다. 죽은 소녀를 보았을 때도 죽음을 끝으로 보시지 않았다. 예수님은 겉모습 너머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보았다. 다른 나라에서 사신 것이다. 전혀 다른 세계에서 사셨다. 예수님은 우리도 똑 같이 살 수 있다고 말씀하신다. 그 세계로 초청하신다. 해 아래의 눈으로 보면 희망이 없다. 해 위의 눈으로 보면 기적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고린도전서 15장 58절) "Therefore, my dear brothers, stand firm. Let nothing move you. Always give yourselves fully to the work of the Lord, because you know that your labor in the Lord is not in vain." (I Corinthians 15: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