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과 행함의 관계
(약 2:14-26)

서론: 지난 주일에는 약 2:1-13을 본문으로해서 ‘차별하지 말라’ 라는 제목의 말씀을 드렸습니다. 야고보 사도 당시에도 회당에 모일 때에 사람의 외모와 물질에 따라 차별하여 대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부자가 회당에 오면 눈여겨 보고 특별 대우를 하고, 가난한 사람이 들어오면 무시하고 앉는 자리까지 차별하는 악한 태도를 가진 사람들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사람을 대할 때에 우선 그 사람이 예수님을 마음에 영접했는지, 어떻게 하면 복음에 대해 말씀을 나눌 기회가 있을 것인지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그 당시에도 부자들은 예수님을 잘 믿지 않고, 가난한 사람들이 믿음에 부요한 경우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부자들은 예수 믿는 사람들을 비하하고 사람들을 법정에 끌고가기도 했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리스도인들 조차도 부자를 선호하고 돈에 대해 노예적인 태도를 가졌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의 기준을 무시하고 이웃을 자신의 몸처럼 사랑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면 율법 전체를 범하는 죄과 같다고 경고했습니다. 오늘의 본문은 약 2:14-26입니다. 이 단락은 야고보서를 정경으로 받아들이는데 큰 문제점을 제시한 단락으로, 이 단락 때문에 야고보서가 초창기 정경목록에 (Muratorian Canon, A.D. 170-200) 에 들지 못하다가 나중에 Carthage Council (A.D. 397) 에서 정경으로 채택되었습니다. 당연히 구원론에 대한 문제였습니다. 이 단락을 조심스럽게 강해하려고 합니다.

1) 행함없는 믿음 (14-18): 14. 야고보는 유대인 형제들에게 항상, “내 형제들아” 라고 부릅니다. 사랑의 표시입니다. 만약에 믿음이 있다고 하는 어떤 사람이 행함이 전혀 없으면 유익이 없다고 말합니다. 일반적 상식은 일단 믿음이 있으면 행함이 따라온다는 것입니다 (요15:4). 그런데 이 경우는 예외이겠지요. 믿음이 있다고 말은 하는데, 실재 그 사고와 행동은 믿기전이나 믿은 후나 전혀 변화가 없는 경우입니다. 가라지는 열매가 없습니다 (마 13:24-30). 저는 개인적으로 예수님을 믿고나니 제 인생전체가 바뀌었습니다. 믿기전에는 이 세상이 너무 불공평하고, 이치에 맞지 않고, 살아야 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죽음에 대한 공포는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복음의 원리를 깨닫고 나니, 마음에 하늘나라에 대한 소망과 기쁨이 넘치고, 인생관이 바뀌고, 내가 왜 이세상에서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철학이 확립되었습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복음전하는 것이 좋고, 다른 사람의 영적인 상태에 대해 관심과 애착이 생겼습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내 죄를 위해 죽으셨으니, 나도 주님을 위해 생명을 바쳐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이지요. 하루 하루가 즐겁고 사람들에게 대해 호의와 긍정적인 마음이 많이 생겼습니다. 다른 목사님들을 보니까, 복음은 안 전하고, 엉뚱한 것에 관심을 가지는 것을 보니 마음이 안타까와 목회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목회를 한 20년 하고보니 저처럼 그런 변화가 없는 경우도 보게 되었습니다. 하늘나라 보다는 이 세상의 물질에 더 관심을 가지고 믿음보다는 돈에 더 집착하는 경우도 보았습니다. 야고보 사도도 그런 경험을 한 것 같습니다. 15. 여기서도 결국 돈의 문제입니다. 다른 형제 자매의 상황에 대해 물질로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없다는 말입니다. 16. 말로는 평안히 가라, 덥게 해라, 배부르게 해라고 하는데, 실재 필요한 물질은 아까워서 못 준다는 말입니다. 돈이 최고니까 그렇겠지요? 17. 야고보는 행동이 따르지 않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믿음이라고 말합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의 복음을 위해서나 혹은 다른 사람의 필요를 채워주기 위해 자신의 물질을 희생하는 것은 바보짓이라고 믿습니다. 결국 이 세상의 돈과 물질을 사랑하면 구원받는 믿음이 없다는 뜻입니다. 18. 믿음은 마음의 작용이라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인데, 눈에 보이는 행동이 따르지 않으면 말로 믿음이 있다고 하는 것은 헛소리입니다. 이것이 야고보의 논리입니다. 야고보도 목회자로서 빤질빤질한 사람들을 보니까 속이 터져서 하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 말에 개인차와 시간이라는 개념을 첨가하고 싶습니다. 비록 진정으로 믿었더라도 개인차가 있을 수도 있고 (바울과 강도), 또 시간이 지나면 언젠가는 변화할 것이라고 기대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1년, 10년, 20년이 지나도 전혀 믿음의 증거가 없다면 다시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여기까지는 야고보서가 큰 문제는 없는 것 같습니다.

2) 아브라함과 라합의 예 (19-27): 19. 야고보도 유신론자는 구원을 얻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한 분이심을 믿는 것은 구원받는 믿음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인으로 모셔야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롬 10:9-10). 20. 여기서 약간의 문제가 제기될 수 있습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헛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시간적으로 어느때인가 하는 것은 문제가 될 것입니다. 21. 이 말씀부터가 문제의 핵심입니다. 창 22:1-19을 아무리 정독해 봐도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침으로 의롭다하심을 얻었다는 말씀은 없습니다. 아브라함이 의롭다하심을 얻은 것은 창 15:6에서, “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물론 야고보는 약 2:23 에서 말하기를 창 15:6에서의 말씀이 창 22장에서 이루어졌다고 설명했지만 지식 없는 사람들이 읽을 때에 혼돈을 줄 수 있습니다. 다른 성경과 비교해 보았을 때에 문제가 됩니다. 복음에 대한 이해가 바울과는 조금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2. 당연히 믿음과 행함은 함께 일하지만 믿음은 그 자체가 완전한 것입니다. 행함으로 완전해 질 필요가 없습니다. 23.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었을 때, 믿음 그자체가 의롭다하심을 받기에 완벽했던 것이지 창 22장의 사건에 의해 그의 믿음이 완벽해졌다는 기록은 성경에 없습니다. 24. 24절의 말씀과 26절의 말씀은 상당히 논란이 되는 말씀입니다. 사람은 믿음으로만 의롭다하심을 받지 행함으로 받는 것이 아닙니다. 26절의 말씀은,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믿음 없는 행함은 죽은 것이라”라고 기록하는 것이 더 복음적일 것입니다. 참고로 루터는 야고보서를 “지푸라기 서신”이라고 서두에 썼다가 나중에 지웠고, 칼빈은 26절을 설명하지 않고 그냥 넘어갔습니다. 25절은 이스라엘의 조상 아브라함이나, 라합같은 기생인 이방 여인도 다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는다는 원리를 강조하기 위함이라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성경 66권은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가끔은 하나님께서 완악한 사람들을 혼동시키기도 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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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한국어설교
    Korean Sermon
  2. 영어설교
    English Sermon
  3. 목사님과의 대화
    Dialogue with Pastor
slogan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고린도전서 15장 58절)

"Therefore, my dear brothers,
stand firm.
Let nothing move you.
Always give yourselves fully
to the work of the Lord,
because you know that
your labor in the Lord is
not in vain."
(I Corinthians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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