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와 가짜

고후12:9-10


오늘 본문은 사도 바울과 복음을 깎아 내리려는 도전으로부터 교회를 지키기 위한 바울의 자기고백적 말씀이라 할 수 있습니다. 본문 말씀 속에는 바울의 사도권 문제가 나오는데, 이것은 바울 개인에게 어려움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복음조차 치명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사항이었습니다. 특별히  3가지 집단(부류)들이 이 문제를 일으켰는데, 200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우리의 신앙 안에 직면한 문제이기도 합니다. 

<본론>

① 먼저 첫 부류(집단)가 나오는데, 이들은 ‘바울의 배경이나 혈통이 미천하며, 율법과 지식 수준이 천박하다’하여 바울을 사도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이들 부류는 당시 예루살렘이라는 지역에서 이주한 그리스도인들이 있었는데, 대부분이 유대교적 색채가 강했습니다. 즉 매우 율법적이고, 혈통을 중시하는 사람들을 말하는데, 이들은 ‘바울의 사도권을 가짜’라고 주장했습니다. 또한, 바울이 혈통과 율법을 중요시 여기지 않는다하여 끊임없이 바울의 사도권을 공격했고, 복음을 변질시켰습니다. 오늘날로 본다면,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요? 교회 안에서 인맥이나, 교회 안에서 연차를 중요시 여기며, 재력이나 출신과 배경을 자랑하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복음 외에도 이러한 것들이 교회생활에 중요하다고 여기는 무리입니다. 

이에 대해 바울은 고후 11:16~22을 통해 이스라엘에서 온 혈통파, 율법주의 그리스도인들이 주장에 대해 반박을 하고 있습니다. “너희들이 생각하는 사도라는 위치, 복음의 위치가 단순히 이 세상에 흔이 말하는 사회적 위치나 배경, 또는 교조주의나 혈통에 국한한다면, 나도 너희들에게 할 말이 있다.”라고 바울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고후 11:22을 통해 바울은 첫 번째 부류(집단)가 도저히 반박할 수 없는 자신의 배경을 말합니다. 하지만, 바울은 이러한 것들이 사도권의 증명하거나, 복음의 내용이라 여기지 않았습니다. 만일 율법주의, 적통주의, 신분주의가 진짜와 가짜 사도성을 증명하는 기준이라면 (또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는 기준이 된다면) 온갖 사회 지도층 인사, 부자, 엘리트 집단으로 교회에 오랫동안 정착했던 무리들이 목에 힘을 쥐고 다닐 것이고, 그들만 구원 받고, 복 받는 자라 칭해질 것입니다. 


② 사도 바울을 가짜라고 주장했던 두 번째 부류(집단)들은 사도성의 기준을  ‘헌신과 희생’이라 여겼습니다. 즉 오늘날로 말하면, 구원의 기준, 복음의 기준이 바로 ‘내가 얼마나 공로를 세웠나,’ ‘내가 얼마나 주님을 위해 희생했냐’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당시 이것을 주장하는 부류들은 높은 종교적 열심과 헌신을 강조하며, 자신의 헌신에 대한 공로를 자랑하는 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이러한 기준으로 바울의 사도권을 깎아 내렸고, 바울이 주장한 복음의 조건에 이러한 것을 포함시키려 했습니다. 

오늘날 말하면, 교회에선 많은 봉사로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사회에선 자수성가 하거나 자신의 노력으로 이룬 것이 많은, 존경 받는 무리들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인생 속에서 하나님이 이루신 일 보다, 자신이 이룬 것이 더 많고, 삶 속에 내 세울 것이 많은 부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열심과 헌신을 구원의 조건, 복음의 조건에 포함 시키려는 움직임이 오늘날에도 많습니다. 좀 더 착하고, 덕이 있고, 열심히 살아가는 자가 결국 구원의 조건을 채울 수 있다는 생각이 오직 복음이라는 믿음을 무너지게 합니다. 이러한 말에 대해 사도 바울은 고후11:23~29에 말씀을 통해 자신의 경험(간증)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위해 죽음보다 더 두렵고, 더 고통스러운 경험을 했으며, 철저히 복음을 위해 희생했던 사람입니다. 이러한 바울 앞에서 자신들의 헌신과 고난을 자랑하며 신앙의 무영담을 늘어 놓는 자들이 있다면, 어리석은 일이라 생각됩니다. 

   

③ 마지막으로 부류는 신비적 체험을 주장하며 바울의 사도성을 가짜라 의심하는 부류입니다. 당시 신비주의 영향으로 체험적 신앙에 역점을 둔 사람들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이 사람들은 어떤 환상이나, 엄청난 계시를 듣거나, 기적을 행하는 것으로, 영적인 힘을 평가하는 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은 ‘바울에게는 신비한 체험이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오늘날 말하면, 신앙 안에서 자신만이 누린 특별한 경험일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만이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 독특한 영적 은사일 것입니다. 또한 일반적으로는 개인의 특별한 능력이나, 타고난 재능을 자랑하는 이들도 이에 적용될 수 있습니다. 이들은 자신이 경험이 전부 인냥 생각하고, 자신만이 날마다 하나님과 직통으로 계시를 받는 것처럼 행동합니다. 그래서 다른 형제, 자매들의 이성을 마비시키고, 바른 결정을 그르치게 하며, 교회를 판단하고 우월의식을 갖습니다. 더 나아가 자신만이 갖고 있는 재능과 능력을 포장합니다. 그들은 교만해서 좀처럼 말씀 앞에서도 순종하려 하지 않을 뿐 아니라, 말씀을 자기 마음대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자신을 겸손한 자인양 포장하기도 하며, 영적인 선각자인 것처럼 행동합니다. 이들이 갖고 있는 생각은 지극히 포장되어 있어, 자기 스스로도 속을 정도입니다.   

이 세번째 부류는 이러한 자신 만의 체험이 결국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자신을 세우는 일체의 도구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복음의 조건이라고 주장합니다. 고후 12: 1~6  말씀에 나왔듯이, 이들 앞에서 바울은 범접할 수 없는 신비로운 체험에 대한 간증을 합니다.  이러한 바울의 놀라운 체험으로 볼 때, 신비한 체험을 주장하는 자들은 결코 바울의 ‘사도권’을 반박하지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은 이러한 이유로 자신이 진짜 ‘사도권’을 주장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신비한 체험, 자신만의 자랑 거리가 ‘그리스도인의 진짜 신앙’, ‘진짜 복음’이라고도 말하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바울은 자신의 사도권과 자랑거리, 더 나아가 진짜 복음은 철저한 자신의 약함과 죄악 됨에서 출발한다고 말합니다.

고후 11:30~33 말씀을 통해, 바울은 첫 번째(배경과 율법주의), 두 번째(공로주의) 부류 사람들이 바울을 공격하며, 사도권을 부정했던 것과 정면으로 대치되는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앞에서 바울은 자신의 혈통과 고난의 경험담을 이야기 했습니다. 이러한 바울의 말은 마치 율법주의자들과 공로주의자들의 주장에 대해 정당성을 입증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러한 것들은 무의미하다고 말합니다. 오히려 자신의 약함과 수치가 사도권이요, 복음의 시작이고, 바울 자신의 자랑임을 말합니다. 바울이 사도권을 주장하는 근거로 가장 소중히 생각하는 것은 광주리 타고 도망쳤던 치욕적인 경험이었습니다(행 9: 25). 

우리는 치욕스러운 일이 있을 때, 그것을 숨기려 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가식된 경험과 부풀어진 배경으로 포장합니다. 그런 것은 결코 강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진정한 약함에서 비롯됩니다. 사도 바울은 숨기고 싶은 자신의 약함이 곧 주님의 강함을 드러낸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주님이 직접 움직이시도록 자신을 온전히 드리는 고백입니다. 복음의 출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온전히 자신의 공적이나, 노력이나, 그 어떤 배경없이 오직 죄인이며, 부족하며, 약하며, 악하다는 것을 인정할 때만이 복음의 은혜가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고전12:7~9을 나눕니다. 이 말씀을 통해 바울은 평생 ‘사탄의 가시’를 지니고 살아야할 연약한 존재임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결론>

이러한 바울의 연약한 자기 고백을 통해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진짜 성도됨의 가장 큰 증거, 복음의 조건은 자신의 재능이나, 배경, 능력, 돈에 속한 그 어떤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직 자신을 온전히 인도하시고, 완전하게 하실 우리 주인되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사도권의 증거이자,  그리스도인의 증거로서 ‘사탄의 가시’를 소중히 여겼습니다. 오직 자신이 약하고, 무능하며, 자신이 멸시받을 만하고, 고통스럽고, 수치스러울 때, 복음이 시작되며, 그리스도께서 온전케 하심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게 됩니다.  

고후12: 10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복음과 그리스도인의 진짜 됨은 온전히 자신의 약함을 깨닫고, 전적으로 그리스도만 의존할 때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진정 큰 복은 주님을 100% 의존하는데서 출발합니다. 왜냐고 묻는다면, 그분이 복음을 통해 약속하셨듯이 우리의 인생을 전적으로 책임지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로 인해 이미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자들입니다. 그리고 그분을 통해 새로운 생명을 얻은 자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소유된 자들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전적으로 책임지시도록, 복음이 진짜 복된 소식이 되도록, 나의 경험과 나의 배경과 돈에 대한 집착을 온전히 내려놓아야 합니다. 오직 주님만 의지하실 때, 복음만을 믿고 나갈 때, 예수님이 우리의 진정한 주인이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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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고린도전서 15장 58절)

"Therefore, my dear br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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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t nothing move you.
Always give yourselves fully
to the work of the Lord,
because you know that
your labor in the Lord is
not in vain."
(I Corinthians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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